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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나.


순간 순간 느껴지는 내 본성의 나.


아마도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인지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난 오랜 시간 동안


"원래의 나로 돌아가자."


라고 나를 되내이며 마음을 다잡고는 했었다.



"원래의 나."

"본래의 나."


과연 나는 그 모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그토록 돌아가려고 했단 말인가.


(사람들은 이따금씩 원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원래 자기 자신... ... 그게 무엇인가...)


난 사무직과는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운동을 어렸을 때 부터 좋아해서 활동적인면이 있었기 때문에, 파티션으로 가로막힌 사무실에서 답답하게 일하며 서류를 이리저리 결제 받으러 다니는 행위보다는 좀 더 활동성 있게 영업 활동을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업관리 직무에 관심이 있던 나는 주로 영업, 혹은 매장 관리등의 일쪽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영업관리 쪽 일은 무조건 욕을 먹어야만 하는 직종 중에 하나였다.


욕 안먹는 직무가 어디있겠냐만은, 회사에 돈을 벌어다줘야 하는 중책을 가지고 최전선에서 뛰는 군인이나 다름 없는 영업직무는 일의 재미와 성취감의 유무를 떠나서 무조건 결과로 평가를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 결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사의 종잡을 수 없는 기준으로 인해 언제나 지적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욕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특히 시시 때때로 바뀌는 기준에 따라 욕받이가 되는 것이 싫었다.

부족한 성과를 내면 당연히 욕을 먹었지만, 심지어 좋은 성과를 내도 제대로 된 칭찬 한마디 받기 어려웠다.


난 상급자들의 끝이 없는 욕심과 요구에 진절머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회사 내부에서 치이고, 고객사 혹은 개인 고객들에게 치이는 현실이 싫었다.


그래서 난 그 때의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조건 영업직은 기피한다.



그래서 사무직 쪽으로 이직을 했다.


위에서 말했 듯, 무엇인가 우리에 갇혀 있는 듯한 회사생활은 답답함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직군은 영업관리 직무와 비교했을 때 편한 부분은 있었다.


내근직이기 때문에 자신의 책상에서 크게 이동할 일도 없었고, 중간 중간 담배도 피러 나가고 동료 직원들과 커피도 마시러 나가고 무엇인가 드라마에 나오는 직장생활과 비슷했다.


사무직 자체가 재밌었다기 보다는 사무직의 환경이 나로 하여금 좀 더 재밌는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회식으로 하든, 무엇을 하든 그래도 좀 단정하고 깔끔할 수 있었다.


뭔가 말끔한 모습의 남녀 직원들이 모여있는 본사 사무실에서는 그냥 내가 좀 더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무직종은 영업관리 직종과는 조금 더 다른면이 있다면 도전적이고 전투적이기 보다는 정적인 문화가 자리잡고 있고, 개선보다는 유지,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진 규율을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말그대로 시키는대로 하는 로봇과도 같았다.


또한, "정치적인 면" 이 많아서 다함께 고생하고 욕먹으면서 쌓여가는 우정이 있는 영업관리 직종과는 달리 인간미가 많이 부족했고, 말 그대로 사내정치를 해야했다. 영업관리 직종에서도 같은 팀원이 서로 경쟁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동질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사무직종은 자신의 일만 잘하면 됐고, 구태여 다른 사람을 도와줄 필요도 크게 없었으며, 업무를 후배나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쳐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나 혼자만 잘하면 됐고, 후배에게 업무 노하우, 문서나 보고서의 작성 요령들을 가르쳐줄 필요도 없었다. 그런 기술들을 가르쳐 줘봐야 결국 그것을 배운 사람이 미래의 나의 경쟁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땀흘리며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동지의식도 잘 생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영업관리직군은 사무업무도 있겠지만 몸으로 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사무업무능력보다는 몸으로 때우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사무직군은 몸으로 때우는 일들이 없으니 전화업무나 보고하는 요령, 문서작성 스킬이라는 것이 거의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이 뜻은, 상대방이 자신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가 매우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무직 직원간의 능력 차이가 별로 없다보니 내가 하나라도 타인에게 나만의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것이 손해인 것이다.


그 삭막함과 개인주의적인 분위기의 사무직이 싫었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그 후에는 여러가지 일 들을 해보았지만 그 중에 물류센터 창고관리직도 해본적이 있었다. 이 직무를 선택했던 이유는,


영업관리 직무가 동적 50%, 정적 50% 의 성향이고,

사무관리 직무가 동적 0%,  정적 100%의 성향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동적 100%의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잘맞지 않을까, 그냥 몸으로 열심히 일하면 되지 않을까, 나만 부지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몸으로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는 일을 내가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못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물류 짬밥을 많이 먹은 사람들이 즐비한 공간에서 나의 육체적인 능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우수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난 내가 물류센터에서 일하면 날라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날라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때가 많았다.


또한 물류센터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나의 성향과는 상당히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밥그릇 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었을까.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해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일들을 하면서 항상 나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 도대체 나는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안맞고, 저것도 맞지 않는다면 난 도대체 어디서 무슨일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겠다는 마음 말이다.




1. 취업을 한다는 것은 나와 맞을지 맞지 않을지 모르는 랜덤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떨어지는 것이다.


일이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난 취업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데, 그 상사와, 그 상사가 지휘하는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잘 맞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어떤 조직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득실대는 공간으로 내가 내발로 걸어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에 운 좋으면 1~2명 괜찮은 사람을 만나 잘 버티고, 운이 좀 나쁘면 전부다 성향이 맞지 않아 자기 자신을 하루 하루 부인해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주름살만 늘어가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취업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취업을 해서 누군가의 밑에서 누군가가 정해준 나와 맞지도 않은 사람들의 집단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그 시작점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일이 싫은게 아니라, 그 조직에서 강제로 짝지어진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물론 이 세상사람들이 모두 그 짜증나는 환경 속에서 일한다는 것,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반감의 감정이 유독 심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난 학창시절부터 항상 반장등의 역할을 하며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기 보다는 리더의 역할을 주로 해왔는데, 그 때 당시는 난 그것이 싫다고 생각했다.


반장이 되면 다른 친구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내가 대표로 혼이 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솔선수범을 보이거나, 일일이 다른 친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며 조심하게 단속하는 몫도 나의 것이었다.


똑같은 학생이고, 어짜피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을 가는데, 내가 왜 그런 대표자 역할까지 해가며 친구들에게도 스트레스를 받고, 담임 선생님에게도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반장이라는 직책, 그 리더라는 자리가 나로 하여금 긴장하고 열심히 살게 만들어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더라도 내가 반장이기 때문에 하나 더 해야했고, 짜증나더라도 그 일은 내가 처리해야만 했다.


반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 생각해 볼 것은, 반장이라는 직책은 중간관리자 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상 내 위에는 담임 선생님 한 명만이 상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내가 신경쓰고 모셔야할 상관이 한 명 이었기 때문에 담임과의 커뮤니케이션만 잘되면 무난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직장으로 따지면 부사장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런데 직장생활은 다르다.


내가 잘 보여야할 사람들이 너무 많고, 내가 직간접적으로 모셔야할 대상이 너무 많다.


단순히 나의 직속상사에게만 잘 보여서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업무적으로 얽히고 섥힌 인맥 체인이 복잡하다. 챙겨야할 사람, 모셔야할 사람, 잘 보여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단순히 30~40명의 학급 동료들만 잘 챙겨가면서 위로는 담임 선생님과만 잘 관계를 유지했던 학창시절의 반장 보다도 훨씬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버티고 버텨서 "니가 회사에서 가장 최고의 자리에 오르거나, 혹은 그 근처까지 가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상상도 하기가 싫다. 그 기간을 도저히 버텨내기가 힘들며, 그 기간이 내 남은 삶의 인생에서 얼마나 긴 시간인 줄도 알고 있다 


난 결국 취업이 맞지 않다. 


취업이 맞지 않다면, 그렇다면 사업?


난 평생을 내가 사업가 체질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사업을 통해서 혹시 실패하게 되면 내게 돌아올 무한의 책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밑에 종속되어 있으면, 즉 취업을 해서 일하면 내가 그 회사 실패의 책임을 떠 안을 일은 없다. 아마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그 순간 오히려 피해자의 위치가 되어 회사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렇 듯, 책임지기 싫기 때문에 취업을 했던 부분이 있다. 너무 앞에 나서는 것도 어렸을 때 부터 많이 해왔기 때문에 지쳤고, 책임을 지지 않으며 뒤로 살짝 물러서 있는 삶이 비록 좋은 대우는 받지 못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밑에 종속된 삶은, 결국 나를 게으르게 하고, 내 삶을 더욱 더 피곤하고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과 불만이 내가 최상급자가 되었을 때 보다 더 많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의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난 리더라는 직책을 즐기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꼬봉의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


난 지금까지 내가 리더의 위치를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반대로 리더의 자리보다는 회사에서의 주어진 직책의 업무 정도에서, 정도껏 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분석은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리더의 자리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자 라는 결론이었는데, 알고보니 나는 리더의 자리도 싫지만, 누군가의 하수인의 자리는 더더욱 싫어했던 것이었다. 


이 나이 들어서 늦게 깨달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을 할 때는 절대적 분석이 아닌 상대적 가치 분석을 해야 한다." 


라는 것이다.


공부가 싫으니 운동을 한다라는 이런 극단적인 절대적 분석이 아니라, 


공부가 싫은데, 운동은 더더욱 싫으니 그냥 공부를 하는 편이 낫다 라는 상대적 분석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3. 상대적 자기 분석의 예상밖의 결과. 그 토록 싫어하던 사무직이 내 적성이 가장 잘 맞는다.


만약 내가 계속 직장인의 생활을 해야 한다면, 나는 무슨 직무가 가장 잘 어울리는가.


사내 정치의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한 움큼 씩 빠지게 만들었던 그 때 그 사무직이 가장 잘 맞았다라는 결론이다.


어처구니 없는 결과이다.


그 때 당시 사무직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다라는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 사람들의 정치질과 되도 않는 보고서 반려, 반려 반려.


다시 조금 수정해서 재작성 보고, 반려, 수정, 보고, 반려, 수정, 보고, 나중에 마지 못해 결제.


직장생활이 전부다 싫었는데, 이런 사무직의 X 같은 상황의 근무환경이 그나마 내게 가장 잘 맞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나는 운동과 몸을 쓰는 활동, 활동적인 성향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본연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운동을 좋아하는 공부하는 모범생이었지, 공부를 좋아하는 운동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 계속 나의 활동적인 모습이 나의 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그래서 정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것을 계속 탈피하려고 살아왔다. 


군대도 통신병과 보다는 일부러 더 활동적인 보병을 선택하기도 했던 것 처럼 말이다.


난 좀 혼합적인 성향의 사람이기에 나 조차도 내 분석이 잘 되지 않았던 것 이다.


난 취미로 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운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지,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난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활동적인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몇 시간 씩 앉아서 책을 보거나 연구를 하거나 팬대를 굴리는 일이 더 잘 맞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난 지금까지 이게 싫으니까 저거 라는 단순한 절대적 기준의 자기 분석을 해왔다.


난 이런게 싫으니까 저런 스타일의 사람 이라는 식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성향은 상대적이다.


이게 싫더라도, 저건 더 싫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사무직을 계속 피해왔었다. 그나마 가장 잘 맞을 확률의 직업군을 난 잘못된 자기 분석으로 계속 피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4. 난 리더가 싫지만 꼬봉은 더 싫다.


난 리더가 싫어서 누군가의 꼬봉으로 살아왔지만, 지금보니 난 그 꼬봉을 더 싫어했던 것이다.


난 취업을 해서 직장인으로서 평생을 살 스타일의 사람이 아닌, 결국 자기 사업을 해야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난 둘 다 싫다.


직장인이 되어 누군가의 하수인으로 사는 것도 싫고, 사업을 해서 망할 위기에 긴장하며 살아가는 것도 싫다.


그런데 이 둘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난 사업을 하는 것이 맞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의 직장생활에 대한 울렁증, 직장이라는 곳에서 맞지도 않는 사람들과 맞는 척 연기하며 사는 삶이 이렇게 싫을 줄은 몰랐다.


사업을 한다고 해서 내 스타일에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게 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사장이면 내가 맞출게 아니라 상대방이 내게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난 차라리 그게 낫다.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내가 뽑는게 서로가 잘 맞을 확률이 높지 , 내가 뽑지도 않은 기존에 뽑혀 있는 사람들과 서로 잘 맞을 확률이 높겠는가. 



물론 직장생활을 함께 하며 서로 간에 맞춰갈 수 있겠지만,


불운하게도 난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집단에서만 일해왔다.

 

 



5. 맺음말.


나의 밥그릇은 몸이 아니라 머리었던 것이다.


난 그동안 몸 50%, 머리 50%, 심지어 몸 70%, 머리 30%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착각이었던 것은 젊은 시절 머리를 사용하는 일 중심의 삶을 살다보니 그게 질렸던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탈출구로 몸 중심의 일에 호기심을 느꼈고, 그것을 마치 내가 몸 중심의 일을 하는 것을 잘하고 즐기는 본래의 성향이라고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바닥, 저 바닥 다 굴러보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나에게 어울리는 직무는 머리를 굴리고, 팬대를 굴리는 직무이다.



난 어떤 일을 하면, 그 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탈출구를 찾으려고만 했었다.


도아니면 모 적인 절대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난 이게 싫다면, 저건 더 싫을 수도 있다라는 상대적인 분석이 부족했다.



또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분석할 때, "착각" 을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원래의 나.


본래의 나.


나?


난 그냥 공부나 하는 모범생이 본래의 나 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모습들이 많이 혼재되어 있었고, 어쩌면 나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라는 그런 이미지를 내게 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하면서 나는 공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난,


그나마 가장 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서류 작성하며, 프리젠테이션 하고, 기획안을 제출하는 일이 그나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팬대나 굴리는 사람이라는 소리가 싫었고, 뭔가 정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공부는 잘하는데 체육 시간에 운동도 잘 못하고, 각종 예체능 과목에서도 부족한, 하루 종일 책상에만 앉아서 공부만 하는 스타일의 친구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것 처럼 말이다.


일은 땀을 흘려가며 일하는 것이 일하고 나서의 보람도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땀 흘리며 일하면 피곤한 법.


책상 머리에 앉아서 컴퓨터 가지고 하루 종일 일하는 모습이 뭔가 뛰어다니며 현장을 지휘해야할 것 같은 내 스타일과 안맞는다고 생각했지만, 


난 알고 보니 책상머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컴퓨터의 모니터를 쳐다보며 고민하는 모습이 차라리 어울리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Written by Kavin.


레알마드리드에 가레스 베일이라는 축구 선수가 있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토트넘에서 레알마드리드로 이적을 했다.


그는 축구 뿐만 아니라 골프도 매우 좋아하며 축구 못지 않게 많은 시간을 현재 투자하고 있다.


그는 축구선수인가 골프선수인가.


그는 축구선수이다.


축구선수들은 이따금씩, 축구를 너무 많이 하다보면 다른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 흥미가, 그리고 현재의 모습에서 탈출하려는 다른 모습이 자기 자신이 "원래 원했던 모습, 원래 하고 싶었던 것" 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것이 착각인지 아닌지 냉정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하기 싫은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 그것들을 그냥 하기 싫은 것들이라는 폴더에 담아 집단화 시키면 훗날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하기 싫은 것들 조차, 서열을 나눌 필요가 있다.


가장 하기 싫은 것, 하기는 하는데 하기 싫은 것, 참고 할만하기는 한데 짜증나는 것.... 등등.



난 싫은 것들은 그냥 싫은 것 하고, 다른 것을 찾아 나서고는 했다.


좋아할만한 것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상당한 시간 낭비와 인생 실패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어찌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수 있겠는가."


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설령, 싫은 일을 하더라도, 덜 싫은 일을 선택해서 하는 것도 인생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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