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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인생이 있디고 생각한다.


인생의 계급을 나누는 것에 거품물고 달려들 사람들이 수두룩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속에서 그들은 모두 그 계급 속에 속하며 스스로 수긍하고 살아가는 모순을 보인다.


재미있게도 난 이 세가지 리그에 모두 속해 보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이나믹한 인생이었다.



어찌보면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다양한 삶" 에 대한 경험은 해본 것이니 작은 목표는 하나 성취해 본 것이라고 하겠다.


구태여 성취하지 않아도 될 성취 말이다.



그 중 하위리그의 삶에 대해서 젊은 친구들을 위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X소리라고 생각되면 스킵하고 안봐도 좋다.


(연봉 200억의 웨인루니. 똑같은 축구를 한다. 누군가는 연봉 200억을 받고 온갖 응원과 찬양을 받으며 플레이하고, 누군가는 2부리그, 3부리그에서 제대로 된 월급도 받지 못하고 플레이 한다.)



1. 더 큰 목표를 위한 서바이벌과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은 다르다.



인생의 상위리그의 사람들은 사실, 현재 이루고 있는 것들을 유지만 해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구태여 더 큰 목표를 성취하지 않아도 그들은 나름대로 사회의 긍정적 인식의 테두리에서 큰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많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또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이 아무리 현재 가지고 이룬 것이 많아도, 상위리그 속의 사람들끼리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부리그의 사람들 처럼 비슷한 고뇌와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한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꿈을 향한 도전이지, 생존을 위한 도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기 직전의 상황에 다다르면, 더 이상의 이성통제는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자신의 생존본능을 발동시켜 옆사람을 밟고 때려서라도 그 지옥의 낭떠러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상위리그의 사람이든, 하위리그의 사람이든 그 리그 속에서 경쟁을 한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이 다르다는 것이다.


꿈을 위한 경쟁과, 생존을 위한 경쟁은 다르다.



젊은 친구들이 즐겨보는 드라마 속에서는 상위계층의 사람들이 악독한 사람들로 항상 프레임화 되어 등장한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하위계층을 지독히도 괴롭히는 것이 바로 같은 리그의 하위계층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자비하고, 냉혹하고, 거칠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반드시 밟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밟히는 대상은 같은 하위리그의 사람들이다.



물론, 상대방을 무참히 짓밟는 하위리그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 어쩔 수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는 것을 "자진해서 하는 사람들" 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런 자발적인 행동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내가 하위계층을 밟고 있으니, 이제 이 더러운 하위계층에서 나도 벗어날 수 있다." 라는 희망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상위계층을 가기 위해 같은 계급의 하위계층 사람들을 발판 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완장질" 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감투 좀 씌워줬더니 자기가 세상 잘난 것 처럼 행동하며 밑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갈구는 사람들 말이다.


하위계층의 사람들의 시선은 항상 "상위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분노"에 향한다.

정작 자신들을 지독히도 괴롭히는 사람들이 같은 하위계층의 완장질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말이다.



"스스로 완장 차기를 자처한 하위계층의 사람들은 상위계층에게 굴복하고 고개 수기며 다른 하위계층의 사람들을 머리를 발로 짓밟고 자신들은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혼자 빠져나오려고 한다."


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결국 당신들은 어떻게든 짓밟을 먹이감을 찾아 돌아다니는 스스로 완장 찬 사람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당하는 수모와 멸시는 여러분들의 자존감을 산산조각 내고, 완전히 파괴시킬 것이다.


상위계층은 말 잘듣는 개를 찾으며, 그 개의 역할을 자처한 감투쓴 하위계층 사람들은 당신들을 짓밟아야만 그 감투를 유지하거나 혹은 하위계층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위계층의 경쟁은 도전과 열정이라는 나름대로 근사한 말을 가져다 붙힐 수 없다.


"적자생존. 서바이벌."


이 단어가 더 정확할 것이다.


(하위계층이 하위계층을 멸시하고 착취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완장질 하는 사람들에게 멸시당하는 인생의 하위 계급)



2. 인생의 하위계층에게는 우정도 의리도 없다.



하위계층의 사람들은 생존이 우선이다.


여기서 생존이란 타인의 생존이 아닌, "자기 자신의 생존만" 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자신이 급한데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을 신경쓸 틈이 없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잘려나가든, 억울한 일을 당하든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독히도 이기적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돕지 않는다. 자신만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하나 하나 계산한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 배신을 많이 하고 더더욱 위기에 처한 타인을 돕지 않는다.



하위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렵더라도 타인을 배려하라."


라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에는 온통,


"상위계층의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거야."


라는 피해의식과 분노가 가득해 있다.


그들의 그러한 분노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동정, 선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히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남탓을 매우 잘하며, 타인에 대한 흉을 많이 보다 보니, 물어뜯을 대상을 자주 물색하고 다닌다.



인생의 하위리그의 사람들이 입에 항상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돈이 최고다."


돈이 최고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에게서 의리와 우정이 있겠는가.


상위계층의 사람들도 물론 돈이 최고다라는 말은 많이 한다.


하지만 당신이 하위계급의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의 열 배 넘게 지독하게 "내 돈, 내 돈, 내 돈" 거리는 사람들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3. 누적된 내리갈굼의 종착지.



사장이 부사장을 갈구고, 부사장이 이사를 갈구고, 이사가 부장을 갈구고, 부장이 과장을 갈구고, 과장이 대리를 갈구고, 대리가 주임을 갈구고, 주임이 사원을 갈구고, 사원이 계약직 직원을 갈구고, 계약직 직원을 갈구는 시스템.


이것이 이 세상의 구조이다.


한 마디가 두 마디가 되고, 두마디가 세마디, 세마디가 네마디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계약직 직원은 X무시를 당하며 갈굼을 당한다.


욕받이의 최종 종착지가 바로 하위계층이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소위도 군생활은 처음이고, 이등병도 군생활은 처음이다.


그런데 출발선이 다르다.


소위와 이등병 중 누가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당연히 이등병이다.


왜냐하면 이등병이 바로 내리갈굼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내리갈굼의 종착지가 되면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거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극히 제한된다.


스스로 그 스트레스를 풀어내야 하는데,


아마 그 때 자신에게 이렇게 혼잣말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짜피 나는 노예니까... ...."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노예로 종속되기 마련이지만,


그 노예 중에서도 하부리그의 노예가 되면 그 때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산책하는 개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개팔자가 상팔자다."



하위계층의 사람들은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앉아라. 미래에 개무시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봐라."


4. 맺음말.



중학생, 고등학생 시기에 학생들은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 보기 쉽지 않다.


물론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도 있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밑바닥 인생은 애초에 매우 어렸을 때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시는 하위계층의 삶에 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미디어들은 당신들에게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세뇌시킨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좋다.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 너희들이 밑바닥을 깔아줘야 우리가 편하게 살지."


라고 말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그래서 가능하면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자격증도 취득하고, 머리에 많은 것을 쌓아두어라.



당신의 인생이 하위계층에 배치되는 순간, 그곳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쉽지 않다.


차라리 젊은 나이에 공부를 했던 수고보다 훨씬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을 나이 먹어서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전에 어떤 노동일을 할 때,


쉬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을 보며 내게 처음 든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사는구나. 대단하다. 존경스러워."


가 아니었다.



내 머리를 스쳐지나간 첫 번째 상각은 바로,


"어렸을 때 저렇게 쉬지 않고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 갔겠다."


였다.



그 사람의 뒤늦은 노력과 수고를 비하하는 뜻이 아니다.


짧은 직선길을 놔두고, 저 멀리 우회해서 뺑 돌아가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쉬는 시간까지 모두 받쳐가면서 땀 뻘뻘 흘리고 일해봐야, 어린 나이에 공부 열심히 한 사람들의 종이 되어 살아가게 된다.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공부해라."



자신들이 평생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공부하지 않고 놀았다가 나이들어서 온갖 무시와 멸시를 당하고, 고생하며 보내왔던 자신의 삶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 할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느냐."


라고 말이다.



세상은 외형만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바뀐적이 없다.


반복되고 또 반복될 뿐이다.



Written by Kavin


사람들은 먹이사슬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먹이사슬의 시스템이 단 한 번도 바껴본적이 없다.


공부하지 않으면 약자가 된다.


"강자는 약자를 병탄한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가 말했던 명대사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화자된 명언이다.


인간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으면 자신보다 열위에 있는 사람을 병탄한다.



만약 당신이 하위계층에 배치되면 누군가가 당신을 동정하며 불쌍하게 여겨줄 것 같은가.


오히려 먹잇감이라고 신나서 들개처럼 당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더럽지만 그게 인생의 순리이며,


그래서 내가 인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다.



환경이 사람을 이렇게 모질고 구차하게 만든다느니, 환경이 잘못되었다느니 이런 말은 논점을 빗나간다.


왜냐하면, 당신은 결국 그 환경을 바꾸지 못하고 배치고사를 본 뒤 상위, 하위 리그에 배치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사는 인생.


상위리그에 배치되기 위해 공부해라.


하위리그에 배치되면 아마 별의 별 인간을 다 보고 살게 될 것이다.



PS : 

하위리그에서 일해보면서, 그 곳 사람들에게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 바로,


"공부를 못해서 어짜피 좋은 곳 취업 못해."

"열심히 해봐야 난 학벌이 안좋아서 성공 못해."


라는 후회의 말, 포기의 말이었다.


오늘부터 도서관 가서 공부하자.

나 처럼 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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