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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아마도 오래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몰아치는 우울한 감정을 견뎌내기 쉽지 않을 듯 싶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들, 한 번 쯤은 가보고, 만나고 올 생각이다.


난 이번에 떠나기 직전의 상황까지 오면서,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앙드레 가뇽의 우연한 만남을 들으며... ...)


떠나야할 이유, 떠난 뒤에 발생할 일들, 떠나기 전 후회감,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미안함 등, 고향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떠나야할 이유도 있고, 


떠난 뒤에 발생할 일들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고,


인생에 대한 후회감도 할 만큼 해서 이제는 없다.



다만, 한가지 풀지 못한 숙제가 바로 남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이 알게 될 나에 대한 배신감이다.



사실 그렇다.


이것 저것 다 따지면, 이것 저것 걱정하면 떠나지 못한다.


떠날 때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아무것도 고민하지 말고 그냥 그 때의 감정에만 충실해야만 한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한가.





난 나에게 미안하지 않다고 내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지만, 그건 억지이다.


미안한 마음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알고 있다.


인생을 타인에 대한 미안함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옥과 같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싫으면 싫은 것이지,


싫고, 버티기 힘든데, 오직 타인을 위해서 그 감정을 억제하며 산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학대이다.



타인을 위해서 사는 삶은 감옥이다.


그 감옥 속에서 혼자 수 많은 고뇌를 하며 억지로 삶을 연장시키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떠나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난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하루 하루 가짜의 나를 만들며 연기를 하고 살아간다.



그럴것이라면 사람들은 솔직하게 살면 된다고 한다.


솔직하게 산다라... ...


만약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져 있다면 솔직하게 살 수 있겠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가 아닌 타인이 있는 세상은 절대로 솔직할 수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규정을 만들고, 


이 세상은 사람들을 통제한다.


난 그 정해진 룰 속에서 통제를 받고 따른다.



그 통제가 질렸다.


어떻게 해라, 저렇게 해라,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조언이 질렸다.


인생의 조언이란 인생이 소중한 사람들에게나 의미있는 것들이다.


인생에 대해서 이미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는 한심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항상 해피앤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해피앤딩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그 결과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꿈을 꾸는 것이 반드시 이뤄지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이 세상이 더욱 더 별로라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이 경험하고 공부할 수록,


이 세상이 더욱 더 별로라고 생각된다.



세상도 별로고,


사람도 별로다.



물론 나 역시도 그 사람이라는 집단 속에 있기 때문에 별로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과연 축복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기쁨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인 것 처럼 살아간다.


하루의 행복을 위해 1년을 고생해야 하고,


한 시간의 행복을 위해 1달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며,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해 하루종일 인내 해야 한다.



난, 그것이 싫을 뿐이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그들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억지로 가짜로 명명 할 뿐.



행복은 저절로 나오는 미소이며,


기쁨은 저절로 나오는 웃음소리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떠한가.


하루 종일 무표정에, 하루 종일 딱딱한 말투에, 냉정함이니 성격이라느니 온갖 핑계를 덧붙여서,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로 만들어진 그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난.


솔직히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 그 어떤 기회나, 혹은 그 어떤 만남이 있더라도, 난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다.



난 어느새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세상의 각박함과 냉정함에 지쳐 있다.


서로 비난하고, 뒤에서 욕하고, 행복한 척 연기하고, 가짜 미소를 띄우며,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하며, 그 스트레스를 뒤에서 배설물로 내 뱉는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을 난 일평생 보아오며 살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구속과 배신,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허세와 연기.


난 결국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많지 않다.


더 이상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으며,


더 이상 나의 과거를 후회하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이 척박하고 야박한 세상에게 그 모든 책임을 돌리고 싶지도 않다.



왔고, 간다.



나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앞으로 살고 싶다고 나를 다잡아 보아도, 그 후회의 감정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


후회가 되서 떠난다는 표현보다는,


더 이상 후회하기 싫어서 떠난다는 표현이 맞겠다.



미안한 마음.


그 자체가 후회이다.


내 삶에 대한 아쉬움과 반성.


그 자체가 후회이다.



난 더 이상, 타인에게 미안해 하고 싶지도 않고, 내 인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싶지도 않으며,


또한 더 이상 나를 반성하고 싶지도 않다.



이미 너무나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할 만큼 했다.


지겹도록, 지긋지긋 하도록 했다.



이제는 하기 싫을 뿐이다.



고통속에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삶이란 가치있고 소중한 것인가. 그래서 자신을 모두 불태워 괴로움 속에서 끝끝내 버터야만 하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내 삶을 누구에게 구걸해 본 적도 없고,


내가 원해서 내 삶을 얻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가치있는 것을 달라고 요구해 본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날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달라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매달린 적도 없다.



그냥 태어나 있었고,


그것이 전부이다.



겉은 멀쩡한데, 그리고 잘 작동하는 것 같은데, 무엇인가 하자가 있는 불량품.


난, 그 불량품을 반품시키고 싶을 뿐이다.



이 세상을 위해 보내졌다면, 이 세상에 맞게 만들어져야지,

이 세상에 안맞게 만들어졌다면,


그것이 불량품 아니겠는가.


불량품을 고치기 위해 온갖 수고와 노력, 스트레스속에 시간을 소비해야하는가.


애초에 처음부터 초기 불량이 난 상품은 수리해도 답이 없다.



반품이 정답일 뿐이다.


Written by K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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