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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썼던 여자들의 문제점에 대한 글에 반응 댓글들이 올라왔다.


속이 후련하다며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관련 링크 : 여자들의 문제점.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https://kmisfactory.tistory.com/1824



제목이 좀 공격적이다.



최근 "김치녀" 라는 말을 여성 혐오 단어로 규정하고 법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고 한다.


이게 지금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할 수 없겠으나 상당히 사용에 제한이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한국 여성.


세상에는 많은 국가의 여성들이 있겠고, 과거 외국에 잠시 살았을 때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을 만나본 적이 있지만, 한국 여성들만의 전반적인 특징을 느끼고는 했다.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알아서 발생된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의존적인 성향.


다른 나라 여성들의 활발함과 솔직한 성향과는 달리 뭔가 도도해 보이는 척 하고 그 알 수 없는 특유의 냉담한 표정들.


활발하고 밝은 편인 외국 여성들에 비해서 무표정일 때가 많은 한국 여자.


뭔가 자신감이 외부로 표출되는 스타일이 아닌 상황에 따라 언제든 태세를 전환하는 환경 의존적인 스타일.

 

 



이것이 내가 외국에서 바라 본 한국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난 가부장적인 집안이 아닌, 가모장적인 집안에서 누나, 사촌누나, 큰엄마, 작은엄마, 고모, 이모 등의 힘이 강한 여성중심적인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 집안이 어디있겠느냐 하겠지만, 의외로 이런 집안들은 많다. 상대적으로는 적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그 비율이 적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의외로 이런 집안이 많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당신들의 집안을 한 번 보아라. 여자들의 기가 약한 집안이 과연 압도적으로 적을까?


당신들의 어머니와 누나, 혹은 여동생이 기죽고 사는 집안이 있는지 스스로들 점검해봐라.



어려서부터 여성들의 집단에서 활동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내가 여자 집단 반, 남성 집단 반에서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해왔던 것이다.




남자 집단과 여자 집단.



스트레이트로 적고자 했으니, 그대로 적어 보겠다.




사람의 겉과 속이 있다면 남자와 여자 중 겉과 속이 훨씬 다를 가능성은 누가 높을까?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순하고 착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말투나 태도도 남자보다 더 착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높다. )

(그러나 그 속의 내면은 여자이기 때문에 타고나게 착하다고 생각하는가?)



내 경험상은 여자이다.


가리워진 모습.


대중 앞에 섰을 때의 모습과 그 뒷모습이 다른 케이스는 여자들이 많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을 한다면 당연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논하기에 8:2, 9:1 정도의 상황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하기 어렵기에 난 전반적으로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말이 이해가 안된다면, 간단한 예를 들어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뉴스 등에 나오는 여자들의 잘못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겉과 속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라는 사람에게는 기대치 자체가 낮다.


평소에 공격적인 성향이 있기에 공격적인 잘못을 했다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드린다.


하지만 여성들에 대해서는 여성이 공격적인 잘못을 하면,


"와...어처구니 없네..."


라고 받아드린다.


왜 일까.


바로 여자들의 겉으로 보이는 외면이 선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이 뜻은 남자의 외면과 행동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여자의 외면과 행동은 극적으로 대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여자들의 선한 외모와 겉모습의 이면.


이 이면에 대해서 나는 인생동안 너무 많은 모습을 보아왔다.

 

 



아줌마 라는 존재.


젊은 여성들은 아줌마라는 존재를 마치 자기들과 선을 그으려고 하며 딴 세상 존재로 치부하려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개념 없는 아줌마라는 사람들의 실체는 여자이다.


그럼 그 아줌마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겠는가.


아니다.


여자들의 숨겨왔던 내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뿐이다.


이제 숨기고 가장하고 포장하고 연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속내를 드러내는 것 뿐이다.


물론, 이것 또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당신들은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할 말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많은 여직원들.


조직에 융화되는 능력은 여자들이 떨어졌다.


내 경험에서 오는 지식일 뿐.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지만,


만약 내게 남자로 구성된 조직과 여성으로 구성된 조직 중에 손목을 걸고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에 배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온다면, 


난 남자 조직에 걸겠다.



이런 나의 글을 보면 가히 여성 혐오주의자 수준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실생활은 어떠할까.


난 전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여성들과 잘 맞는 편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여자 후배나 여자 선배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는 편이다.



글의 내용은 전부다 여성에 대한 비판인데, 어떻게 여자들과 대화를 잘하고 소통하는 편일까.



A4지 박스를 계속 날라달라고 요구하는 여자 직장 선배.


난 내가 날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일까.


간단하다.


딱 봐도 힘 없어 보이는 여자들이 A4지 박스를 나르는 것을 건장한 남자가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꼴이 좋아보이는가?


아니.


그걸 떠나서 낑낑대고 나르는 여자 선배를 보면, 그것이 설령 여자가 아닌 힘 없어 보이는 마른 남자선배라고 해도 도와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약해 보이는 사람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내면에는 페미니즘의 원론에 반대되는 한가지 잘못된 마인드가 있다.



"여성들은 약하다."



이것이 내가 가진 마인드이다. 


"GIRLS CAN DO ANYTHING (걸스캔두 애니띵!!!!)"


에 반대된다.


난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는 가부장적인 꼰대일 것이다.


 

 



정수기통을 갈지 않는 여직원.


난 당연히 내가 갈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또한 A4지 박스를 나르는 것과 이유는 같다.



생수 묶음을 드는 와이프.


내가 와이프는 없어서 미래를 알 수 없겠지만, 당연히 남편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이유는 같다.



즉, 육체적으로 힘든 일들은 남자가 여자들을 위해서 일정 부분 희생해야한다는 것이 나의 인생관이다.


이런 마인드가 이미 자리 잡혀 있는 내가 여성 집단이나, 여자 직원, 동료, 친구들과 부딪힐 일이 많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여성 혐오자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여성들을 위해서 일정 수준 배려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나는 글 속에서는 여성 혐오자로 인식된다.



회식을 가면 여자들이 보통 술에 약하니까, 모닝케어를 따로 구입해서 챙겨주는 편이다.


그리고 남자 선배 중 술 먹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여직원들이 피해를 받지 않게 미리 미리 내 선에서 그 선배 옆자리로 가서 술시중을 들어서 원천봉쇄해버리거나 여직원들을 먼저 보낸다.


어떤 회사에서는 그 때 당시 대리 였던 내게 여자 과장님이 쌈을 만들어서 계속 먹여주기도 했다.



신기하지?


그런데 왜 여자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나는 현생활에서는 여자들에게 호의적인 사람일까.



난 여성을 "약자" 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평가하지 말라고 하는 그 약자 말이다.


그래.


그럼 난 여성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진 세상 뒤쳐진 꼰대에 나쁜 인간이다.


여성들을 약자로 취급하니까 말이다.



여성을 약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여성 혐오주의자 취급을 받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그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하지만, 이 약자라는 기준은 "육체적 약자" 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정신적으로 여자를 약자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국 여자들의 태도, 행동, 말투" 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다.



위의 케이스들을 보면 거의 다 여자들의 신체적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배려해주는 것들이다.


술에 약한 특성.


체력적으로 약한 특성.


남성들의 지나친 행동에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특성 등에 말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을 배려해준다고 해서 정신적인 부분, 사고 방식까지 배려해준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여자를 어른이 아닌 초등학생 취급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난 여자를 초등학생 취급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이 우리나라식 페미니즘.


즉 배려는 배려 대로 받아야 한다는 쿼터식 여성 할당제 등의 궤변.


그런데도 여자들은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모순적인 입장.


내가 이것까지 이해해주기란 당연히 어렵다는 것이다.



난 여자에게 천사 같은 모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 집단에서 오래 생활해 보았고,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여자들도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고 해줘야 하고,  남성들이 보이게 안보이게 희생하는 것들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런 남자들의 배려에 대해서 너무 당연하게 살아온 측면이 많다고 본다.


남자의 희생이 언제나 당연하게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


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직장이나, 학교, 학원에서 직접 마주치는 여자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그 비율이 너무나 높다.


내 경험적 지식에는 말이다.


이 또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로 방어를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실들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나 또한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확률적으로 따진다면, 나는 남직원과 여직원 중 누구를 뽑을 것이냐 라고 한다면, 육체적인 강약을 떠나서 남직원을 뽑을 것이다.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의 수준 때문에 말이다.



만약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반대한다면, 


"모든 여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에요."


라는 자기만 방어하는 말이 아닌,


"페미니즘 반대 운동"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바로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사람이 "소수" 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남자에게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있다고 말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소수이기 때문에 그 설득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 중, 페미니즘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의 퍼센테이지가 얼마나 될까?


(양예원의 미투를 지지했던 수지. 분명 사리 판단, 앞뒤 구분 안한 그냥 여자니까 지지한 수준의 무지한 행동이었지만, 과연 수지만의 잘못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나라 여성들이라면 대부분 그냥 이유 불문, 양예원을 지지했을 것이다.)


여성들은 페미니즘 속에서 만들어진 불평등한 법적 혜택을 실제로 누리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은 암묵적인 동의일 뿐이다.


극성적 페미니즘, 예를 들어 이상한 탈을 쓰고 나온다든지 이상한 바디 페인팅을 하고 정신병자처럼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한다든지 그런것을 이상하게 본다고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소히 깨어있는 여성들이 그런 과격한 모습이 싫다라고 해서 자신은 페미니즘을 부정한다고 말하는 면이 있는데, 그건 페미니즘의 극히 일부의 모습이고, 그 몸통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대림동 여경의 자질 문제.


과연 여성들 중 비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팔굽혀펴기를 무릎을 꿇고 하는 초등학생 수준의 여경 체력 평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여성은 "몰표를 던지는 성향" 이 있다고 자주 말한 적이 있다.


몰표를 던진다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면, 팔굽혀펴기를 그 따위로 하면 안된다고 스스로 자성해야 하겠지만, 그 어떤 여성들도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왜냐.


우리나라식 모순적인 페미니즘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려는 배려대로 받고, 권리는 권리대로 얻으려고 하고, 명분은 명분대로 얻으려는 그 모순.


그 모순에 대해서 지적하고 여성들 스스로 한국식 페미니즘을 깨부수려고 했던 적 있는가.



없다.


왜냐.


거의 다 동의하기 때문이다.



왜 동의하느냐.


자기들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남자 직장인들이 여자 직장인과 한 팀이 되는 것을 좋아할까?


그 좋아하는 케이스는 그 여자 직장인의 능력이 우수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가?


그럼 왜 좋아하냐고.


여자라서 좋아하는 거다.


이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산업 현장의 현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남자와 여자는 평등할 수 없다.


정우성과 내가 똑같은 아저씨라고 평등하게 대해줄 것인가?


이런 질문에는 농담식으로 넘어가버린다.


진지한 질문인데도 말이다.


왜 농담식으로 웃으면서 넘어가고 대답하지 않을까.


난 한국 여성들의 그런 모순적인 태도가 싫을 뿐이다.



태어나길 다르게 태어났는데 어떻게 평등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추구해나가야 하는 것은 평등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 최소한의 존엄성" 이다.


적어도,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그런 차별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남자 판사 50%, 여자 판사 50% 선발 등의 인간 기본적 존엄성과는 상관도 없는 자신의 성별을 위한 이기심 따위 말고 말이다.


공사판 인부 여성 할당제를 논하지 않는 모순적 페미니즘은 지지할 생각이 없다.



이야기가 많이 새어나갔다.


제목으로 돌아가서,


남자들이 한국 여자들의 특징을 비판하면 무조건 욕을 먹는 이유.


한국 여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점을 스스로 자성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즉 그 문제점이 주는 여성에 대한 혜택에 대해서 누리려는 것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대다수의 여성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완전히 절대 아닌데? 페미니즘에 절대 반대해!"


이런 생각 가진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극소수 중 한명이다.


이런 한국 여성들의 문제점, 한국식 페미니즘의 문제점에 대해서 진정으로 반대하는 여성이 매우 극소수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지적은 무조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토록 모순적인 한국식 페미니즘에 대해서 제대로 된 반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들 스스로에게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



배려라는 것은 마음이 아니다.


배려는 행동이다.


자기쪽으로 선풍기를 돌려놓은 여직원도 마음 속으로는 눈치도 보이고 미안함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배려심이 아니다.


땀흘리는 남직원에게 자신을 희생해서 선풍기 방향을 바꿔주는 행동이 배려이다.



A4지 박스를 대신 날라주는 남직원을 보면서 뻘줌함을 느끼겠지.


그것을 느낀다고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 A4지 박스를 옆에서 나르는데 거들려는 액션을 하는 것이 배려이다.


남자니까 할 수 있겠지가 아니라, 남자들도 힘들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액션을 취하는 것" 이 배려이다.



정중하게 부탁하고,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고.


이런 액션.


수고하는 남직원을 위해서 냉커피라도 하나 커피믹스에 얼음이라도 띄어서 가져다 주는 액션.



상대방이 진정 고마움을 느껴서 행동하는 액션은, 남자들도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그 액션의 취지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고마워."


끝.


형식적인 고마움의 표현. 그건 그냥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맙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못느낄 수준의 고마움의 표시는 별로 고맙다는 액션을 애초에 안했다고 볼 수 있다.



진정 고맙다면 표정, 어투부터 당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나라 사회는 여성들이 남자들의 배려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는가.


스스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여자들도 배려하는데?"


이런식으로 대응하는 여자들도 무척 많을 것이다.


이런 대응이 많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 듯, 암묵적으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있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


서로가 당연히 배려해야 한다.


그런데 육체적 강자인 남자와 육체적 약자인 여자 중에 누가 더 배려를 많이 하는 상황이 발생하겠는가.


이런 매우 쉬운 문제에 답변이 어렵다면 할 말 없다.



배려라는 것은 더 가진자가, 더 여유있는 자가, 더 능력있는 자가 배푸는 것이다.


더 건강한 청년이 나이드신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쌩쌩한 여대생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월급이라도 꼬박 꼬박 타먹는 직장인이 가난한 아이를 위해서 기부하는 것이 배려이다.


그럼 다시 물어보겠다.


남자와 여자.


둘 중에 누가 더 배려를 많이 해야할 입장이겠는가.



그럼, 누가 더 고마움을 느끼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겠는가.



그럼, 한 가지 더 물어보면,


한국 여성들은 한국 남자들에게 고마움을 잘 표시하는 문화를 가졌는가.



당신이 사용하는 냉장고, TV, 싱크대, 유모차의 쇠, 플라스틱은 그 고열과 더위 속에서 누가 만들어내며,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은 그 위험함을 무릎쓰고 떨어지면 죽는 환경 속에서 누가 만들고 있는가.


당신이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는 누가 치우고 있으며, 당신이 버린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들은 누가 치울까?


내가 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당연함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한국식 페미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들은 자신들이 페미니스트인지 조차 인식 못하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수십년간 한국식 페미니즘이 뿌리 깊게 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 환경에서 자라고 생활한 여성이 그 당연함 속에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분명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 의식을 못느끼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현실이다.



그 당연함속의 문제점은, 자성하고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 만연한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들 스스로의 저항조차도 없는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조차도 구분 못하는 현실.



심도 있게 여성, 아니 자기 인간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할 만한 여자들이 많이 있을까?


글쎄... ...



페미니즘이라는 벽이 사방으로 당신을 둘러싸고 있다.


그럼 당신은 페미니즘이라는 영역에 있을 뿐이다.


그럼 페미니즘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망치든, 뭐든 그 벽을 깨 부셔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서, 수고로움과 노력이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아닌데?"


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페미니스트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은 그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자각도 해본 적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페미니즘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노력 없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럼 결론이 나온다.


한국 여자들을 비판하면 무조건 욕을 먹는 이유.


그건 우리나라 여성들이 대부분 이미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제점을 비판하면 무조건 욕을 먹는 것이다. 


머리 커트하고 쌩쑈하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많은 부분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라는 말이다.



그럼 한국 여성들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글을 왜 적는가.


그냥 뭐 내 생각을 적는 것이니, 큰 의미는 없다.


고쳐라?


그런 것 아니다.


바꿔라?


그런 것 아니다.


난 어짜피 우리나라 여성들이 바뀌든 말든, 혹은 한국 남성들이 바뀌든 말든 별 상관이 없다.

한국이 잘나가든 패망하든, 글쎄, 난 뭐 크게 상관없다.


그래.


상관이 없으니까 적는다고 표현하는것이 맞겠다.


남녀 성별의 이익 관계 속에 속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있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한국 남자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공정할 것이다라는 성대결 적인 접근을 원한다면 해줄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남자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먼저 비판하지 않는 이유?


비판할 것 있나?


지금까지 수십년 간 계속 욕 먹고 있는 것이 한국 남자인데.




한국식 페미니즘.


이것은 상당히 복잡하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다.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왜 복잡하냐고?


한국식은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여경 체력 측정시 무릎 꿇고 팔굽혀 펴기는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사상으로는 당연히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데, 한국식 페미니즘에서는 정당한 것이다.


여자는 군대를 안간다?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 국가로써, 모든 남자가 강제로 군대로 끌려가는 판에, 걸스캔두애니띵을 외치던 여자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모순을 현실에 이리 저리 가져다 붙히려고 하니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우리나라 법체계 이며 사회 자체가 혼란스러워 지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100개, 1000개는 들어줄 수 있다.


글이 길어지니까 여기서 줄인다.


Written by Kavin.


좀 냉정하게 말하면, 

남자와 여자 중 배려심 있는 성별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난 당연히 남자로 선택한다.


생물학적으로 당연할 수 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사회적인 측면도 크다.


위에서 손목 걸고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뽑으라면 남자 조직을 뽑는 이유도 그러하다.


내가 남자라서?


내 손모가지 날라가게 생겼는데, 남자라고 같은 편 들어주게 생겼는가.


이 말을 해주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배려의 수준 차이가 매우 많이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을 단순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하기에는 그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배려는, 안타까워 하는 마음만을 가진것이 배려가 아니다.

배려는, 액션이다.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액션.


"어떻해?"


라고 울면서 징징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하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액션.


그것이 배려이다.


난 아쉽게도, 그 배려의 수준을 남자나 여자나 사람마다 다르다 정도로 퉁쳐주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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