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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여여행 11편 - 양평 두물머리. 인생 뭐 있어? 그냥 사는거지.. 생각에 잠기다.



양평에 있는 두물머리에 왔다.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조용한 사색을 즐기고 싶을 때 오는 곳이다.


그냥, 난 이 곳에 오면 조용히 두물머리 호수길을 거닐며 생각에 잠긴다....


나의 인생에 방황이 시작된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앞만 보며 달려오던 나는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가고, 이제는 과거의 친구들도 나에게 적응이 되지 않을 만큼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내가 생각했던 세상이 아니었으며,

내가 생각했던 가족도 아니었고,

내가 생각했던 사랑도 아니었으며,

내가 생각했던 우정도 아니었다.


내가 배운 책 속의 세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나를 완전히 지쳐버리게 만들었다.


(두물머리에 보통 이른 새벽이나 저녁시간에 오고는 했었다. 이렇게 햇볕이 따가운 낮에 와보는 것은 처음이다. 경치가 장관이다.)


인생의 방황은 방황을 끝내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내가 방황을 끝내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


그래서 결정짓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방황을 끝낼 의지가 있어야 하나, 끝내자 끝내자 말로만 되내일 뿐, 난 그럴 의지가 없는 것이다.


만약 이 인생이, 아니 이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방황의 끝을 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겪어온 10대 때 부터 경험해온 이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나에게 결정적인 좌절감을 준 사람들을, 나는 마음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냥 소심하고 착한 아이었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게 괴물이 되기를 강요했다.

강해지고, 사람들을 밟고 이겨내기를 원했다.


그래...


난 애시당초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은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기에 나는 모질지 못했다.


(두물머리에는 산책로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인적이 드물고 생각에 잠기기 좋다.)


그래.


난 애시당초 이 세상과 맞지 않았다.


나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난 호기심이 많았지만 일반적인 남자아이들과 같은 알 수 없는 허세와 공격성은 없었다.

남자다움.

그래. 난 남자다움이란 없었다.

강한척 겉치레 했을 뿐.

난 강하지 않았다.


난 무서웠다.

이 세상의 공격적이고 과격한 사라들.

흔히 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위해 독기 서린 눈빛을 가진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부담되었다.

난 그들을 이길 자신은 있었다.

난 기본적으로 그들보다 우수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의 미래로 삼고 싶지 않았다.


나의 미래의 모습이 그들과 같이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여자를 위해 공격적으로 쟁취하는 삶을 살고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내가 주인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원치 않았다.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공격적이고, 좀 더 이기적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나를 무시하고 원망했다.


난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나를 계속 이 세상의 수 많은 욕심을 위해 싸우는 싸움꾼을 만들어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 말이다.

 

 

(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말 맑은 날을 골라갔다. 두물머리의 경치는 조용한 감동을 준다.)


난 이 세상이 원하는 나와, 나의 나와의 사이에서 수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도 아닌, 그리고 이 세상이 원하는 나도 아닌 이상한 내가 탄생하게 된다.

겉으로는 이 세상의 기준에 맞춰주다가도, 혼자 있으면 나는 너무나도 지쳐버린다.


연기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도무지 연기를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삶?


그냥.


그냥 조용한 곳에 와서 그냥 아무말 없이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

낮에는 따뜻한 태양을 맞으며 그리고 밤에는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 운치를 느끼면서 말이다.


난 남자아이었지만, 별을 좋아했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했다.

난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랐다.


여자는 아니었지만, 여성스러운 면이 상당히 많았다.

난 전투적이고 호기적이지 않았다.

문제가 있으면 대화로 풀기를 좋아했고, 술도 좋아하지 않아서 친구들과 그냥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내게


"남자답지 못하게."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


재밌지 않은가...

정작 나보다 운동도 못하고, 신체능력도 떨어지는 남자들이 말이다.

축구를 하면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잘했다.

농구를 해도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우수했다.

난 거의 모든 스포츠에 대해서 친구들보다 훨씬 우수했다.

체력장을 하면 항상 반에서 최우수 급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보다 신체능력도 떨어지는 남자들이 나보고 남자다움을 강요한다는게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허세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이 사회 깊숙이 뿌리박고 있었다.

그 허세 사이에서 자존심 싸움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도록 말이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었다.


난, 학창시절, 그 어떤 책에도 인생은 먹이사슬이라는 글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배운 정규과정에서 말이다.

인생은 먹이사슬이다. 허세와 자존심이 팽배한 먹이사슬 말이다.


(뽕잎밭인가? 무슨 식물인지 모르겠는데, 주변 절경과 잘 어우러진다.)


허장성세가 싫다.

욕심에 쩌들었으면서 순수한척,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척 하는 이 세상의 연기자들이 싫다.


먹이사슬은 필요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 먹이사슬의 외곽지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피해서 살고,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먹잇감을 쫒아다니는 들짐승과 같은 이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아예 그들과 함께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부딪힐 필요도 없고, 맞설 필요도 없다.

조그마한 권리라도 하나 생기면 지배자 인척 으시대는 사람들이 싫다.


"나는 아니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보아온 수만, 수십만,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과연 동화속에서 툭 튀어나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바로 너다.

바로.....너.


그냥 조금 이해해주고, 약하면 조금 더 배려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약하다고 무시하고, 지배하려고 하고 정복하려 하는가?


인간은 전쟁의 동물이었다.

인간은 권력의 동물이었다.


그런데 자기는 아니란다. 나는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누가 전쟁을 일으키고, 그렇다면 누가 권력을 휘두르는가.

누가 이 사회의 사람들의 머리를 이토록 썪게 만들었단 말인가?


바로.

너다.


나는 아니야가 아니라, 바로 나이며, 바로 너가 이 세상을 썩어 빠지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자신만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그래.

그래서 나는 대화를 포기한 것이다.

이 세상과의 대화 말이다.


자신은 아니라는데, 내가 무슨 대화를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서로 자신은 모두 착하고, 상냥하고, 예의바르고 정의롭고, 봉사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자기 스스로는 모두 그렇다고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입을 닫는다.


그래서....난 입을 닫는다.


그리고 그냥 산다.


무엇을 입증할 필요도, 내 인생에 대한 변명을 댈 필요도 없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던 어짜피 이 세상은 자기들만의 그룹화된 사회이다.

내 그룹과, 내 권력과 내 집단이 아니면 소외된 자에 대해서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겉치레만 할 뿐.


(두물머리는 자연스러운 물안개가 일품이다. 용이되지 못한 이무기라고 써있다. 두물머리 나루터에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곳 두물머리 나루터는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갔지만 결국 될 수 없었던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 물줄기와 북한강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

그건 내게 행복이 아니며,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

그것 역시 내가 꿈꾸는 사랑이 아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

그건 내게 성공이 아니며,

세상에서 말하는 남자다움.

그것 역시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난 영웅처럼 죽기도 싫고, 드라마 속 로멘틱한 남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힘쎈 운동선수가 되고 싶지도 않고, 허세에 가득한 주먹을 쓰는 건달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난.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조용히 살고 싶은 나를 괴롭히고, 어떻게든 조용히 살지 못하도록 만든다.

조용히 살면 이상하게 보고, 말 없이 살면 바보 취급한다.


그냥...

그냥....

이상하게 볼 것도 없고, 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것 뿐인데.


세상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한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등등의 말을 한다.


뭐 도대체 그들이 얼마나 남자다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만나오고 대화해온 수천, 수만명의 그 찌질한 뒤에서 역겨운 짓거리를 하는 남자들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인가? 꿈속에서 나왔는가?


왜 그들은 갑자기 새로운 연기자로 변모하는가?

그토록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인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세상 남자답고 멋진 인간처럼 코스프레 하느냐 이말이다.


내가 누구에게서 그토록 실망했고, 내가 누구에게서 그토록 좌절했는데.

바로 내 인생 속에 함께 했던 단지 3~4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질구질한 인간들을 보면서 좌절했던 것 아닌가.


이게 인생인가?

이게 사람들인가?

내가 이런 사람들과 평생 엮여서 살아야 하나?


내게 그토록 실망감을 주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데, 왜 그들은 모두 연기자로 둔갑해서 세상 남자답고, 세상 멋진 사람으로 되어있느냐 이 말이다.


날.

좌절시켰으면서...

이런 사람들과 평생 엮여서 산다는 것이 괴롭겠다고 느끼게 했으면서.

왜 이세상 사람들은 모두 정의로운가...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뻥 뚤린 하늘)


그래서 그냥 산다.

난 이 세상 사람들의 뒷모습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나는 그냥 산다.

난 이 세상 사람들의 숨겨진 모습들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에, 나는 그냥 산다.


적어도 난.

적어도 난 타인에게 내가 정의롭다 하지 않으며,

적어도 난 타인에게 깨끗하다 하지 않으며,

적어도 난 타인에게 함부로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규칙을 따라 산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착각하고 있다.

이 세상의 규칙은 정의를 위해 편의적으로 가공되어진 것이지,

그 규칙이 정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편의가 이 세상의 수 많은 괴물들을 양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편의가 정의라고 믿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말이다.


이 세상의 규정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가장 위험한 사악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것을 규정지을 수 없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미친듯 활보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의롭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들은 정의라고 한다.

우습지 않은가?

세상을 막상 썪어가게 만드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들은 이 세상의 편의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에는 걸리지 않는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밥을 주지 않아도 안걸리면 그만이다.

안걸리면 그는 좋은 부모이다. 존경받는 부모이다.

그리고 밥을 안준다고 그것이 이 세상의 규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이하의 행동이다.


그래도 상관없단다.

이것이 이 세상이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완벽한 살인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지만 증명할 수 없기에 무죄가 나오는 것 처럼 말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완벽하게 서로를 죽이고 보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증명할 수 없기에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세상의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것을 정의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규정에서는 친절할 필요 없다.

그러나 그 친절하지 않음은 타인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이 세상의 규정에서는 무표정한 냉담함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냉담함은 바로 이세상을 썪어가게 하는 폐단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서로가 정의롭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사의 규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아무말 하지 않는 것이다.


절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면, 난 설득시킬 수 없다.

이 세상은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다수결의 원칙이 정의라고 말하지 않는가.

소수는 다수에게 당연히 지배당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세상의 규칙아닌가?

그럼 나는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용기도 없기에 그것에 대항할 생각도 없다.


동의하지 않는 다는 의사표현은 그냥 묵묵무답.

아무말 하지 않는 것 뿐이다.


(두물머리 앞에 있는 집. 팬션인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나이 들어서 이렇게 시골이나 산 속에 집을 짓고 혼자 살고 싶다.)


설명할 필요 없다.

변명할 필요 없다.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의 룰을 따르라고 강제되어진다.


난.

이 세상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이 세상의 생산을 맡기 위해 태어난 그런 세상의 부속물이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난.

그냥 나다.


이 세상을 위해 기여할 필요도 없고, 이 세상의 규칙대로 짜여진 각본대로 살아갈 의무도 없다.


태어났고, 살고 있지만 난 이 세상의 소유가 아니다.

언제부터 이 세상은 사회라는 테두리에 사람을 가두고 살고 있단 말인가?


사회?

없어도 된다.


내가 태어나서 만약 사회가 없다면, 그냥 없으면 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사회라는 집단을 구성해서 서로 핍박하고 살해하고 복수하고 지배하려 하는가?

그리고 왜 내가 강제로 그 속에 가담되어져야 하며, 그들의 규칙을 따르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태어난 이 지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 지구는 누군가에게 소유되고 있는가?


왔다가 가는 인생.

평생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왜 소유를 정한단 말인가?

수십년 살다가 가는 인생, 왜 수억년은 되었을 이 지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느냐 이 말이다.


도대체 인간의 사회라는 것이 무엇인데....


인생 뭐 있는가.

그냥 산다.

내가 태어났기에 사는것이지,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으면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중심적으로 살라는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이 사회를 중시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사회를 중시하라고 가르친다. 


난.

나를 살 뿐이다.

누구에게 귀속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 누구도 귀속시킬 수 없다.


세상은 인간에게 의무를 정했다.

하지만 그 의무는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강제되어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강제된 세상속에 원치 않았던 탄생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도 없는데,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고마워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겠지. 그렇게 쇄뇌를 당했겠지.


감사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다.

감사하는 것은 자유이다.


오늘도 도시 속의 사람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 또 하나의 연기자가 되어 멋진척 행복한 척 살아간다.

그리고 뒤에서는 힘들어 죽겠다고 온 갖 배설물을 입으토 토해낸다.


난.

그냥 산다.

인생은 그냥 주어졌기 때문에 산다.

그러나 내게 주어졌기 때문에 그 누구에 의해서도 강제될 수 없다.

내게 주어진 것이니까.

그러나 달라고 한 적 없다.

하지만 주어졌다.

권리는 있으나 책임은 없다는 뜻이다.

그 책임이란 타인에 대한 책임과 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만 있을 뿐.

자기 반성과, 자아성찰과, 자신에 대한 발전만 있을 뿐.


그러나 세상에 규정이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기 반성이 없기 때문이며 이상한 규칙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규칙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 가짜.

그 가짜 속에서 사람들이 가짜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썪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것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한다.

그 가짜는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물머리는 나룻배와 수생식물, 호수, 하늘, 그리고 산이 어우러진 절경의 명승지이다. 물안개는 조금이라도 항상 존재하는 듯 하다.)


이토록 생각의 끝은 덧 없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도 무상하다.


그들의 인생은 그들 스스로 평가할 부분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의 꼬리들은 결국


"됬다...."


라는 탄식으로 모든 것을 무상하게 만든다.


그래.


이러한 모든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군가를 탓할 필요도 없고, 타인의 인생을 논할 필요도 없으며, 세상이라는 이 연극무대를 논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살면 그만이다.

살다가 지치면 몸이 쇠하면 떠나면 그만이다.


억울해 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은 나의것을 외칠 필요도 없다.

인생은 자유라고 외칠필요도 없다.

나는 나다 라고 외칠 필요도 없다.

평가할 필요도 없다.

비방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살면 된다.

그냥 살면서, 나를 생각해 보면 그만이다.

가끔씩, 이따끔씩 나를 생각해 보면 그만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를 생각해 보면 그만이다.....


타인의 내가 아닌.

그냥, 나를 말이다.


나를 결국 평가하게 될 것은, 바로 나 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결국 그 끝에는 나와 일대일로 마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모든 것을 함께 해줄 수 없으며, 인생이든 그 이후의 세계이든 그 끝을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 자기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가.


난 그 때 만나게 될 나의 나에게 해줄 말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난 지금 살 수 있는 것이다.


Written by Kavin


복잡하다.

복잡할 것 없다.

그냥 살면 된다.

인생 뭐 있나?

살다, 죽으면 된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살 필요 없다.

그냥.

나를 느끼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살다보면 깨달음이 있겠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란, 세상 속의 내가 아니라, 바로 나의 나 보다 나은 내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나를 바라보는 내게 더 나은 내일.

겉모습의 내가 아니라 말이다.


항상 생각의 끝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는 한다.

어쩌면 그 제자리가 바로 내가 있어야할 자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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