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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분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보며...


오늘도 커피숍에 왔다.

오늘은 스타벅스가 아닌 이디야에 왔다.


저번에 스타벅스에서의 중국 조선족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질려서, 오늘은 이디야로 결정을 했다.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데, 뒷자리에 여자 두명이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 여기도 여자들 엄청 시끄럽네..."


(여혐은 아니다. 단지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 대한 불만이다. 난 여자와 남자를 나누지 않는다. 난 여자든 남자든 사람이라는 한 테두리에 안에서 생각한다. 그러나 보통 커피숍은 여자들이 많으므로 여자들이 매우 시끄럽게 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책을 보려는데, 아무래도 뒤에서 떠들고 있는 여자분의 발음이 이상하다.


책을 읽는 척 하면서 그냥 들어보았다.


아무래도 언어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인 것 같았다.


그 장애인 여자분의 맞은 편 여자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떠들어 댄다. 


난 처음에 시끄러워서 이어폰으로 귀를 막으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이어폰을 내려놓았다. 시끄럽게 들리던 목소리가 매우 아름답게 들렸다.


여자 장애인과 대화를 할 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편하게 이야기를 꺼내고 깔깔 거리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부터 나에게 그들의 수다소리는 소음처럼 들리지 않았다.


난 어렸을 때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80시간 정도 봉사활동을 했었다. 난 그 때 장애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똑같구나..."


그렇다. 장애인은 그냥 똑같은 존재였다. 몸의 일부가 불편할 뿐, 그들이 내가 보호를 일부러 해야하고, 무엇인가 배려를 해줘야 하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것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부터 장애인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그냥 신체가 건강한 사람 대하듯이 농담도 막 던지고, 똑같이 대한다.


대학시절에 또한 청각 장애가 있는 후배의 필기를 대신해주는 대필 수업을 들었다. 교양과목이었는데, 봉사활동 수업으로 1점 짜리 학점이었다. 그 청각장애 여학생은 상당히 귀여운 아이었다. 그리고 매우 밝았다. 그냥 귀가 밝지 않았을 뿐, 여느 내 후배들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면 오버를 하면서 도와주려고 액션을 취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냥 똑같이 대하는 것인데 말이다.

 

 


저렇게 여자 장애인 친구에게 편하게 이야기 하는 여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듯함을 느낀다. 


우리나라에 많은 장애인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 정말 편안한 친구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 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들도 참 재미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그냥 해본다.


나도 장애인 친구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도움을 주려고 그런 친구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도움을 받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찌보면 세상의 여러가지 편견을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어찌보면 내가 배우지 못한 그 이상의 수준으로 단단할 것이며 일반 적인 사람들 이상의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단단한 마음을 배우고 싶다. 아마 서로 시너지를 잘 낼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난 사실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했다. 


(봉사활동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봉사활동 단체의 현실을 깨달으면서 부터, 봉사활동을 잘 하지 못했다. 특히 나는 장애인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난 어짜피 대화를 나누거나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과 글씨로 이야기를 나누던 조용히 앉아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던 잘 맞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도 어찌보면 사회생활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봉사활동 단체의 문화는 


"우리는 봉사활동을 하는 좋은 사람이다."


라는 것을 강조한다. 적어도 내가 꾸준히 봉사를 하고 싶었던 각종 단체들은 그러했다. 결국 봉사활동 단체들은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하나의 친목단체들에 불과했다. 난 어린시절 이런 단체들의 특성을 보며 상당히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었다. 난 적어도 썪어빠진 세상 속에서 이런 NGO 단체나 봉사 단체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단체를 찾으러 다니는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의 소모였다. 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삶 속에서 봉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자연스럽게 찾아다니려고 애쓰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난 봉사를 해야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내 스스로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억지로 의무로 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책임감에 찾아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장애인친구와 편하게 이야기하는 내 뒷자리 여자가 부럽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장애인과의 대화가 봉사의 개념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난 장애인이건, 아이건, 여자건, 남자건 내게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이다. 다만 장애인들이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더욱 누릴 수 있는 것을 못누리게 하는 이 사회적 구조는 인정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 사회적 구조 속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내가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을 뿐이다.


결국 봉사활동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있는 커피숍에서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런 인간에 불과하면서 변명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냥 막 써본다. 

어휘력이 딸리므로, 아마 지금 적는 이글이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을 잘 표현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난 어찌보면 장애인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


나보다 힘든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

누군가가 어려움에 있을 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아무튼 참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한다. 

뒷자리에 앉아서 내가 고개를 돌리고 쳐다볼수는 없지만,

그냥 내 등뒤로 느껴지는 듯 하다.


세상이 이처럼 돌아가는 이유는,

아름다운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비록 소수더라도, 그 하나의 사람이 수만명을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From Kavin



머라고 쓴거냐?

나도 모르겠다.

그냥 시끄럽게 수다 떠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네...

신나게 떠들면서 스트레스 풀고 가세요. 아가씨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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