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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과 순두부찌개로 보는 사회생활

 

직장을 다니다보면, 많은 사장들이나 상사들은 자신들이 무척 신세대 감각이 있는 듯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마치 해외 유명 회사들이 가진 오픈마인드와 일명 freestlye 적인 모습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새로 들어온 직장인들이나 부하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뭐 먹고 싶어? 너 먹고 싶은 걸로 먹자."

 

등의 말을 건낸다.

 

언뜻보면 매우 친절하고, 후배나 직원들을 생각하는 태도로 보이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생활에서 사용되는 말들에는 "해석집"이 필요하다. 우리가 영어단어를 외울 때 한국말 뜻을 함께 외워야 하듯이, 사회생활을 할 때도, 사회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에 대한 한국말 뜻을 제대로 해석할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은 연기의 연속이며,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렇게 사회생활 속의 말들이 속 뜻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기 때문이며,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하루 종일 상대해야 하는 일은 인간의 뇌의 피로를 좀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라는 말로, 후배나 직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척 한다. 언뜻보면 정말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속임수 이다. 결국 함께 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선에서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라는 말이다. 앞에 "내가 좋아하는 선" 이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결국

 

"네 마음대로 행동하지마."

 

라는 것과 별반 차이 없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받아드릴 수 있는 것 중에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라는 뜻이다.

 

그런데, 필자가 갑자기 순대국과 순두부찌개를 제목으로 걸었는지 의아애 할 수도 있다. 이 소재들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쓰인다. 케빈이 겪은 하나의 에피소드이다.

 

상사 : 케빈. 너 점심 뭐 먹고 싶냐?

케빈 : 아무거나 좋습니다.

상사 : 넌 뭐 먹고 싶은것도 없냐? 이런건 센스있게 이야기할줄도 알아야지.

케빈 : 아...네. 그럼 순두부찌개 먹고 싶습니다.

상사 : (인상을 찌푸리며) 순두부찌개? 너 매운거 좋아하냐?

케빈 : 아...뭐. 좋아하는 편입니다.

상사 : 그래.... (한참동안 말이 없다.)

케빈 : ......

상사 : 이 근처에 어디 순대국 하는 곳 없나?

케빈 : ......

상사 : 너 순대국 먹냐?

케빈 :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상사 : 순대국이나 먹자.

 

이 에피소드를 잘 보면, 서로 여러번의 대화를 거쳤지만, 의미없는 대화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상사가 먹고 싶은 걸로 결정나 버리고 끝난다.

 

상사는 애시당초 케빈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볼 때 "내가 좋아하는 선" 이라는 표현만 삭제한 것 일 뿐이었다. 결국 상사가 먹고 싶은 것을 맞추는 게임수준에 불과한 대화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직장문화이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말하는 사회생활이다. 위사람은 아랫사람의 의중을 진지하게 살피지 않는다. 단지 만일을 대비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살피는 척" 만 할 뿐이다.

 

 

 

이를테면,

 

상사 : 힘든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라고 밑밥을 일단 깔아놓고, 정작 케빈이 힘들어서 상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

 

케빈 : 상사님. 최근에 이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그 때 좀 힘들었습니다.

상사 : 야. 사회생활에서 그정도 할 수 있는거 아니야?

 

라는 식으로 돌아와 버린다. 힘든일 있으면 말하라는 것도 역시나 "내가 받아드릴 수 있는 선" 이라는 앞의 수식어가 빠져있는 것이다.

 

위삿람들은 모두 자기중심적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갑이기 때문이다. 갑은 을을 생각해 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갑인 것이다. 을의 힘은 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래서 을이기 때문이다.

 

순두부찌개를 먹고 싶어도 결국 순대국을 먹어야 하고, 괜히 순두부찌개라고 말했다가 센스없는 부하직원 따위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결국 윗사람들이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윗사람들은 말한다.

 

"아래애들이 잘해야지. 그래야 우리도 잘해주는거 아니야? 우리도 다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어디서 공짜로 올라올려고 그래?"

 

이 마인드가 지배적인 이상 이나라의 사회구조에 변화따위란 없다. 물론 겉으로는 변할 수 있겠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단지 스트레스를 90% 받느냐 80% 받느냐의 차이이지, 직장생활을 하며 보람과 열정을 느끼는 그런 구조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내리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내리사랑을 학창시절 주구장창 배워왔다. 부모로서 높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배워왔다. 그러나 정작 사회생활은 올림 사랑이다. 아래에서 잘해야 위가 잘해주는 구조이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선에서 말이다.

 

이것에 대해서 비판할수도 없고, 이것에 대해서 원망할 수도 없다. 그냥 이것이 현실이다. 만약 이 구조를 벗어나고 싶다면, 스스로 잘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누군가에게나 자신을 당당하게 내비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정도의 능력자가 아니라면 결국 이런 사회구조 시스템에서 억지로 순대국을 먹으며 웃어보여야 할 것이다.

 

난.

순대국을 먹기 싫다고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나의 판단 미스는 나는 그들에게 순대국이 싫다고 할 정도의 능력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난 갑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단지 을이었다. 어찌보면 나의 사회생활 전략을 그렇게 실패했었던 것 같다.

 

물론 난 아직도 순대국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아니... 순대국을 계속 참고 먹다가 상사에게 평생 순대국이나 퍼 먹으라고 밥상을 업고 나오는 스타일이다.

 

결코 좋은 면이 아니다. 그래서 난 사회생활이 힘들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은 거짓으로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솔직함을 강조하지만, 결국 세상은 거짓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그 모순 사이에서 나는 그렇게 혼란스러웠나 보다.

 

나처럼 되기 싫다면, 인생을 실패하기 싫다면 순대국을 먹으며 웃어보여라. 아니면 사회생활에서 사용되는 말을 말 그대로 해석하지 말았으면 한다. 적어도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말이다. 난 사회생활에서 그랬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때로는 비참해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다. 여러분들이 그렇게나 갈망하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원한다면... 이렇게 했으면 한다...

 

From K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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