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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행 4편 - 대전 카이스트 산책과 사색 (후회하고 있는가.)


 

나는 카이스트에 왔다. 


무작정, 차에다가 자전거를 하나 실고, 밤길을 거슬러 카이스트에 왔다.


카이스트는 그냥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대학교 중 한 곳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카이스트의 졸업생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가끔, 마음이 힘이 들 때는 대전까지 긴 시간의 여행을 오고는 한다.

그리고 카이스트에는 꼭 들러서 산책을 하고 간다.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무슨 여행을 와서 대학교 교정을 걷는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카이스트라는 곳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내가 카이스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길. 나의 삶과 생각 글에서, 한 번 찍어서 올린적이 있다. 그 때는 가을이었는데. 지금은 여름이어서 가로수들이 녹색으로 가득차 있다. 개인적으로 가을일 때, 낙엽이 하나 둘 질 때, 그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나 생각이 든다. )


대학에 대한 환상.

공부에 대한 환상.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곳이 바로 카이스트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무엇인가 신비한 수재들이 다니는 곳 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나는 단지 그런 환상을 가지는 것으로만 족했다.

왜냐하면, 나는 공학공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나와 친했던 선배 한명이 카이스트로 편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평생 공학 연구를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은 그냥, 남이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했을 때 멋있어 보이는 것일 뿐, 막상 나보고 평생 공학 공부를 하라고 살라고 한다면, 나는 하기 싫었다.


그냥, 이 대학이 주는 환상과 감성이 좋았을 뿐이다.

 

 

교정을 거닐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대학원을 카이스트로 갔다면...."

"만약 내가 대학교를 카이스트로 갔다면...."


하고 말이다. 내 친구 중 한명이 카이스트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면, 은근히 주변 사람들이 카이스트와 관련이 많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만약 카이스트로 대학원을 갔다면, 아마도 지금의 인생은 너무나도 많이 바껴있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는 내가 공학 쪽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계속 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수 있겠지만, 만약 그 때, 과거의 나로 돌아가서 다시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면, 나는 공학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어짜피 다시 그 상황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의 선택이 변하는 것은 없었다.

단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결과론적인 후회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카이스트라는 곳이 사람들에게 많이 공개가 되었지만, 불과 10년 전, 20년 전만해도 이 곳은 사람들에게 미지의 공간이었다.


똑똑한 영재들이 가는 곳.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공부하는 우리나라의 엘리트?


(카이스트의 새벽 아침. 하늘이 뻥 뚤려 있고, 그 아래 카이스트 건물이 아름답다. 서울에서 이런 장소가 있을까? 아마 없겠지. 난 이런 환경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래. 


나에게 묻는다.


네가 바라는 카이스트라는 곳은, 환상으로서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서 좋아하는 것인가.


나는...

환상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학분야의 연구가가 되고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적인 재능과 관심이 뛰어나서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난 딱 그 경계의 위치에 있다.


그 중간.

퓨젼 말이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딱 중간.


그러다보니 결정장애도 심하고, 진로에 대한 정확한 목표의식도 부족했었나 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그냥 그것이 나인데, 이제와서 무엇을 어찌할 수 있으랴.


그러나 부러운 것은,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넓은 장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뻥 뚫린 하늘을 보며,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이 카이스트라는 공간 말이다.


그래서 대전에 대학교가 위치해 있다는 것이 참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다녔다면, 나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 서울에서의 삶을 매우 괴로워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어렸을 때 부터 지방에서 살자고 부모님께 조르고는 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납득이 안가겠지만, 나는 하늘의 별을 좋아했고, 뻥 뚫린 시원한 자연경관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고궁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창경궁이나 경복궁은, 서울 내에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고요함과 자연의 운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후회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과 경험과, 그리고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는가.


세상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았고, 그것에 대해서 좌절하고, 실망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는가.


조금 더 냉철하게, 사람들이 그러하는 것 처럼, 나 자신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며 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가.


지금의 나를 후회하는가.....


후회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족하다.


지금 이렇게 자전거를 타면서 카이스트 교정을 달리는 것.


학생들의 무엇인가 기대감에 넘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까리용과 아직도 구식건물인 산업경영학동, 그리고 어쩌면 내가 갔었을 수도 있는 정보전자공학동...


(10년 전 쯤에는 이런 멋진 잔디밭 축구장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카이스트 단지의 가장 중앙에 이렇게 멋지고 화려한 축구장도 있다. 사실 이렇게 잔디밭으로 예쁘게 꾸며진 신식 운동장을 가진 대학교들이 별로 없는데,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나보다. 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 공학공부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짜증나고 힘든 분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환경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카이스트 학생들과 석박사 들이다. 나는 직접 석박사의 과정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을지 상상을 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카이스트 학생들이 더욱 더 힘을 내고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게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난 이곳이 좋다.


그냥 이곳이 좋다.


그 어떤 멋진 경관보다, 그 멋진 여행지보다도, 그냥 이곳이 좋다.


내 인생에서 공부를 해야할 목적의식을 심어준 곳이다.


물론, 내가 근접할 수 없을 만큼 천재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이런 교정을 가진 카이스트 대학생들이 부럽다.


사람이 많지도 않고, 딱 소수정예의 인원들만이 있는 이 공간이 부럽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1년 한 번, 2년 한 번, 이 학교에 들러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교정을 구경도 하면서 보내는 그냥 이 시간으로 나는 족하다.


나는 족하다.


내 인생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고, 너무나도 어리숙했던 것에 때로는 실망감과 좌절감이 밀려와서 눈을 뜨기조차 싫을 때......


그럴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이것으로 족하다.


이곳에 왔을 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지 알았다.

천천히 저녁 바람을 맞으며 교정을 걷고, 그냥 생각해 본다.


그런데 더 이상 나에게 해 줄 말이 없다.


과거에는 이런 곳이 카이스트구나 하고, 신기해서 사진도 찍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찍고 싶은 마음도 없다.

더 이상 찍어야할 이유도 없다.


나의 마음 속에서, 카이스트라는 곳이 주었던 인생에 대한 희망과 인간의 도전, 그리고 열정의 감정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고, 그리고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환상에 빠졌던 것에 대해서도 후회는 되지만, 그것으로 족하다.

사람에 대한 호나상에 빠졌던 것에 대해서도 후회는 되지만, 그것으로 족하다.


만족이라는 표현은 쓸 수 없겠다.


그냥 .... 족하다.


기억속에서 지나가는 과거의 수 많은 사람들과, 어찌보면 지금의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던 이전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한 때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의지도 없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싫다.


그냥, 지금의 이 순간에서 살며시 불어오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그대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싶다.


나는 멈춰 서 있다.


그리고 지금의 멈춤에 대해서, 후회하는 감정은 있지만, 이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대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돈 없던 시절.

나혼자 기차를 타고 무작정 이 곳에 왔었다.

그 때는 기차값이 무척 비싸다고 생각했고, 큰 맘 먹고 왔던 기억이 난다.

조용히 카이스트 교정 내에 있는 쉼터에 앉아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던 시간이 기억난다.

까리용을 실제로 보며 신기해 하고, 오리연못의 오리들을 보며 신기해 했었다.


그러나 난, 그 때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아니다.

항상 돌아가기를 꿈꿨었다.

하지만 이제는 꿈꾸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났고, 그 꿈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그 꿈의 세계로 돌아갈 의지가 없다.


나는,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그냥 나 일 뿐이다.

미래의 나, 

과거의 나,

그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이다...


Written by K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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