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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미생을 보고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찌보면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이 드라마를 보았다면 아마 저는 지금 보다 조금 더 냉철한 직장인이 되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날의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고,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드라마는 좋은 수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울 것도 많고,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몇 가지 공감할 수 없는 내용도 있고,


특히 


"시청자들의 반응"

"시청자들의 댓글"


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시청자들의 댓글을 보았을 때 저마다 드라마 미생에 대한 내용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은 미생에 대한 이야기를 공감하고 있었고, 자신들도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댓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보면


XXX: 오차장 같은 상사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렇게 착하고 부하직원 생각해주는 상사맨은 없다.


라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많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적지 않게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미생 드라마에 대한 거의 모든 댓글들은


"저런 사람들 때문에 문제야."


라는 것 입니다. 


즉, 자신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죠. 

모두가 자신이 피해자입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이 사람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손에 꼽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는 다 누구인가.


직장상사?


사장?


회장?


부장?


가장 저를 힘들게 했던 존재들은 보통 같은 급의 사원, 주임, 대리, 아니면 과장급 입니다.


(워킹맘. 그녀도 피해자이다. 그녀의 고달픔이 드라마 속에서 나오게 된다.)

(워킹맘이라서 힘든게 아니라, 직장생활은 원래 다 힘들다.)

(워킹맘의 현실. 과연 앞으로 편하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서로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렇겠죠. 그러나 같은 직장에서 월급으로 빌어먹는 동지애 라고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기에 댓글을 달면서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외국인?


대기업 사장?


능력있는 부장?


아니요.


바로 저를 포함한 직장생활을 하는 월급쟁이 사람들이겠죠.


저는 사실 지금 이세상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포기했다."


라는 말이 더 맞을 것 입니다.


사람들에 대한 포기....


말이죠.


제가 사람들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후배에게 잘해주는 선배?


과연 몇이나 될까요? 


수 많은 수만개의 댓글, 수십만개의 댓글이 드라마 미생에 관련된 영상자료나 보도자료에 달리지만, 과연 그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상사이며 동료일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 이죠.


자기 자신이 그렇게 좋은 상사나, 좋은 동료가 아니라는 것 조차 모른다는 것.


그 것을 모르는 무지와 무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반성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바로 그 직장생활에서 누군가에게는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꼰대와 같은 동료나 상사일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지금까지 직장을 여러 곳 다녀보았습니다.

다양한 직종에서 일해보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좋은 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남탓" 을 합니다.


(여자라고 성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선차장.)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오류는, 대다수가 선하고 성실한데, 소수가 악하다는 배경이다.)

(직장생활을 해보면 알겠지만 대다수가 선하지도 않다. 대다수가 선했다면 직장생활은 그 소수만 피하면 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는 좋은 직장인" 이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자신은 장그래와 같이 안타깝게 능력이 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아니요...


능력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이 소수입니다.

능력 있으면 그 능력을 인정받는 곳이 직장입니다.


능력이 없으니까 인정을 못받는 것이 거의 9할 입니다.


그러나 항상, 남탓, 남의 탓, 직장 상사 탓, 동료 탓을 합니다.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지 않기에 짜증내고 불만을 토로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나는 정상이고, 나는 좋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나빠서 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태반입니다.


이 마음이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의 직장문화? 바뀌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바뀌겠죠. 겉모습은 바뀌는 척 하겠죠.


그러나 결국 똑같다는 소리 입니다.


10년이 지나도 직장생활은 욕나오고, 2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뀌어야 겠죠.


내가 선배니까 선배 대접 받으려고 하죠.


선배처럼 행동하면 대우는 해줍니다.


그러면 이런 논리를 피겠죠.


"잘해주면 기어오른다."


이렇게 자신만의 유리한 명언을 이용한 논리를 피기 시작하면, 그 끝에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직장생활이 답이 없는 것 입니다.


왜.


결국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요.


장그래라는 존재는 좋은 직장 동료일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석율이라는 친구가 상당히 밝고 재미있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장그래는 그의 모든 친근한 태도에 냉정함으로 대합니다.


타인에게 웃는 그런 동료, 타인에게 밝은 동료 그런 사람들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장그래는 한석율을 조금은 한심하게 대하죠.


한심하게 대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자라온 배경에 대해서 그래서 자신이 이렇게 밖에 대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시켜주면 되는 것 입니다.


결국 한석율이 웃음을 잃는 것을 보고나서, 그걸 가지고


"세상이 이렇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장그래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타인을 맞추려고 합니다.


댓글들을 보면


"모두가 직장생활의 피해자 입니다.


그럼 가해자가 누구입니까?


모두가 피해자인데, 10%가 90%를 괴롭힌다는 말입니까?


괴롭힐 수 있겠죠. 그러나 직접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럼, 10%가 90%의 피해자중 10%를 괴롭힌다면, 그 10%가 또 아래의 10%를 괴롭히고 계속 이런식으로 내리갈굼을 한다는 것이죠.


결국 댓글을 다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 먹이사슬 속에서 가해자의 입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 입니다.


(미생의 오차장에 대해서 인터넷 댓글로 사람들은 멋진 상사라고 말한다.)

(드라마여서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수 있기에 멋진 것이지, 오차장이 계약직 사원에게 하는 말투와 행동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다.)

(열심히 하려는 장그래에게 상처주는 말을 많이 하고, 또한 무시도 많이 한다.)

(사람들은 직장생활에서의 무시와 상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이 사회의 적폐이다. 당신이 끊으면 된다. 그리고 대화하고 이해를 시키면 되며, 안되면 직장의 룰대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어짜피 그 계약직 사원의 인생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고 그의 인생을 위해 무시하는 말과 상처주는 행동을 한단 말인가?  타인의 인생에 대해 무슨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당했으니 다른 사람도 당해야지."


이것이 여러분들의 생각아닙니까?


아니라고요?


그럼 어떠한 마인드로 살고 있습니까?


"내가 수고해서 얻어냈으니 너희는 쉽게 얻으면 안되지."


결국 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한, 아니, 그 사람들이 이나라의 대다수를 차지 하는 한, 직장생활의 고통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모르더군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지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매장에 물건을 발송할 일이 있어서 본사에서 택배를 붙힌다라고 보죠.


그럼 그냥


"장그래씨. 이거 매장에 보낼 물건이니까 택배좀 보내줘요."


라고 그냥 감정 섞이지 않은 말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매우 차갑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이렇게 변명을 댈 겁니다.


"사회생활이 무슨 장난이야? 내가 욕을 했어? 뭐를 했어?"


라고 말이죠.


같은 말을 해도, 그냥 좋게 이야기 하면 됩니다.


좋게 해서 말을 안들으면 불러서 대화를 해보면 되고, 대화를 해도 안먹히면 그 때는 직장생활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보고, 상부에 보고를 해서 인사 처리를 하면 되는 문제이죠.


그런데, 그 후배가 일을 할려는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파악도 안된 상태에서


"의심"


이라는 것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이죠.


그 의심은 보통 직장생활에서 대충 2년 정도 유지가 됩니다.


"짬대우"


이 말도 웃긴 말이죠.


이런 자기 중심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타인에 대한 자신의 언행을 합리화 시키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99% 입니다.


 

 


"좋게 말해주면 되잖아요."


라고 물으면


"니가 애야?"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잘못이 없죠. 그러나 한 명은 상처를 입는 것이죠. 


일에는 감정을 섞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말투가 감정이 섞여 있는 말투라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내 원래 말투 쓰는건데?"


그건 그 사람 입장이죠.


다른 사람이 대다수가 그의 말투에 불만이 있다면 바꿔야죠.


"내가 욕을 했어?"


또 이런식의 논리가 들어오기 시작할 겁니다.


반복되는 것이죠. 계속 그렇게 반복되고 누군가는 퇴사하고, 다시 신입이 들어오고 똑같은 일로 고통받고 또 퇴사하고, 서로 욕하고....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는 소리 입니다.


누군가는 말이죠.


그러나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피해자야."


라는 마인드인데 이 사람들이 끊겠습니까? 아니죠.


다른 사람들이 끊어주기를 바라겠죠.


결국 아무도 이 뭉쳐 있는 문제의 실타래를 끊지 않는 소리입니다.


드라마 100번 1000번 좋은 드라마 나와봐야 소용 없다는 소리 입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는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죠.


건방진 동료, 건방진 상사, 냉랭한 상사, 무시하는 상사....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부자? 재벌? 갑부? 사장 아들?


아니요.


다 여러분들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월급쟁이 서민이나 중산층입니다.


즉,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있고, 여러분들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지. 나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라고 말한다는 것 입니다.


(차가워지고 조용해진 한석율.)

(장그래는 시종일관 한석율에 대해서 차갑게 대응해 왔다. 비록 그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제 직장생활 속에 내가 한석율이었다면 과연 자신의 우호적인 태도에 대한 장그래의 냉랭한 반응에 기분이 좋았을까?)

(드라마 이기 때문에 장그래가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우울한 표정과 형식적인 말투, 그리고 사람을 바둑의 수로서 대하는 대하는 자세의 사람은 과연.... 직장생활에서 좋은 사람일까?)

(꼭 한석율의 차갑게 변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만족이 되는가? 마치 자신이 인생에서 한 수위라도 된 것 마냥 말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화가 썪어 문들어지게 하는 원흉이죠.


"난 문제 없어."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 입니다.


미생 드라마에 대한 인터넷 자료들에는 오늘도 수 많은 댓글들이 달립니다.


거의 다 "피해자" 입니다.


가해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 즐겁게 하시는 분 있습니까?


일 자체가 힘들어서? 일이 왜 힘들까요? 나이많은 꼰대 때문에? 여러분들이 나이 많은 부장이나 이사들과 다이렉트로 업무를 하고, 자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업무 처리합니까?


사장들과 합니까?


사장들은 여러분들과 노는 급도 아닙니다.


오히려 잘해주죠. 


상관도 안한다는 소리입니다.


결국,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들 입니다.


왜.


"내가 당했으니까."


이 마인드로 말이죠.


왜.


"내가 더 나이 많으니까."


"내가 더 직급 높으니까."


"내가 더 선배니까."


이 마음 안가지고 사회생활 하시나요?


이 말을 쓰면 아마, 


"그게 잘못된거야?"


라고 하시겠죠. 그래서 안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겁니다.


"개념 없네..."


그 개념 없는 사람과 진솔하게 대화를 해보신 적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성의 있게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에서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왕따를 시켜버리죠.


그리고 그 왕따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니가 잘못했으니까 왕따당하지."


이런 마인드가 있으니까요.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와준다는 말은 "대가 없이, 혹은 손해보고 상대방의 발전을 돕는다는 뜻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돕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조건부로 돕는다. 니가 날 잘 대해주면 도와주겠다."


그러니까 거짓으로 대하고, 거짓으로 웃고, 배신하고 무시하고 하는 겁니다.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없다는 뜻은 모두에게 유토피아가 없다는 뜻이지, 몇몇 사람들에게 조차 유토피아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즉 1000개의 모든 직장이 좋을 수는 없지만,

990개의 직장이 썪었다면 10개 정도의 직장은 매우 훌륭하고 좋은 직장일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그 10개의 좋은 직장은 바로 여러분들이 만드는 것 입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 그 바뀌지 않는 세상에 만족하고 살던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뀐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자신은 바뀌지도 않을 거면서, 타인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것 또한 이기심입니다.


미생이나 각종 직장생활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도를 넘어선 악역"을 가지고 그 사람을 악의 축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실제 직장생활에서 그렇게 악의 축이 될 정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힘들어하고 못한다라는 것은, 악의 축이 될 정도의 사람은 그냥 공공의 적이 되어버리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슬금 슬금 괴롭히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소리 입니다.


성추행이나 공금횡령하는 사람? 사내폭력?


직장에 몇명이나 있겠습니까? 


많이 잡아야 10%라고 한다면, 그 10%가 나머지 90%를 괴롭히지 않는 다는 소리 입니다.

직접적인 관계에도 있는 케이스도 적고 말이죠.


(내 눈에는 장그래 역시 드라마의 주인공 상 수 많은 해설로 그의 현실을 포장해 주지만, 똑같은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본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수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계산한 다는 것이다. 계산적인 사람... 계산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

(서로가 서로를 계산하는데 멋진 직장생활 따위가 존재하겠는가? 어짜피 다른 사람의 머릿 속 바둑판위에 놓여있는 바둑알 취급 받는 사람들 끼리 뭉쳐있는데 말이다.)


그럼 그 90%의 대다수의 직장생활을 욕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누구에게 피해를 받고 있느냐.


바로,


당신들 입니다.


어짜피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어짜피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행동하는 것 아닙니까?

똑같이라도 행동 안하면 여러분들이 피해자가 되니까요.


어짜피 바꾸려고 노력도 하지 않을 거면서, 다른 사람 탓을 하는 댓글들을 보면, 

가끔 웃음이 나옵니다.


저 역시도 사회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적어도,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나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 입니다.


무지.


무식.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입니다.

왜냐하면 반성하지 않고, 계속 똑같이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이 사회를 지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더더욱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사회생활에서 더더욱 고통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들도 어짜피 바뀌지 않을 거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란 소리 입니다.


서로 안바뀔 것이고, 계속 반복된다.


변화를 위해서는


"희생"


이 따릅니다. 누군가는 조건 없이 자신을 희생해야만 그 어떤 조직이든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조직을 위해서 희생할 겁니까? 타인을 위해서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여러분들에게 사회생활 속에서 고통을 줄 겁니다.

어짜피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죠.


미생 드라마를 보다가 댓글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냉정한 글일 수도 있는데, 이게 현실 인 것 같습니다.


뫼비우스의 띠 처럼, 끝이 없는 문제이죠.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데, 끊어야만 끝이 있고 변화가 있는데, 끊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누가 희생하실 겁니까?


무슨 일만 터졌다하면 모두 국가탓으로 돌리는 이 사회속에서 누가 희생할 겁니까?

무슨 문제만 있으면 다른 사람 탓하면서 누가 희생할 겁니까?

업무 문제가 터지면 다른 동료 탓할 꺼면서 누가 희생할 겁니까?


희생이란 논리가 아닙니다.


내가 잘못한게 없으니까 희생할 필요 없어.


이런 논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희생이 아닙니다.


희생이란, 그냥 희생입니다.


자기가 억울하든, 불합리하던....

그래서 희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겁니다.


"내가 도울 필요가 없어서, 내가 바꿀 필요가 없어서, 내가 득이 되는 것이 없어서,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꺼니까"


이 마인드로 사는 사람들이 이세상의 태반인데, 누가 희생해서 바꿀 겁니까.


결국 본인도 똑같은 사람일거면서...


외관은 바뀔 수 있겠죠.


잘해주는 척, 좋아하는 척, 친절한 척.


그러나 그 하는 척이라는 것은 결국 바닥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바닥나면, 또 다시 변화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바뀌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숙이고 대화를 요청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습니다.


" 밝게 일하면 안되나요? "

" 서로 좀 웃으면서 하면 안되나요? "


인터넷 댓글에는 이런 글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저의 직장생활 속에서 이렇게 긍정적이고 밝게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있죠. 소수.


대다수는 아닙니다.


인터넷 댓글에는 참 많은데...


참 많은데...


왜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한 번 돌아보겠다는 댓글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까요?


둘 중에 하나겠죠.


직장생활을 거의 해 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도 바뀔 생각이 없거나.


드라마는 참 잘 만들었는데,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조금 씁쓸해 지는 마음이 듭니다.


 

 


밝게 인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뭐가 그렇게 무엇이 그렇게 불만인지 서로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견적 내면서, 간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십니까?


왜냐고요?


자기자신이 먼저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변화를 요구합니까.


자신이 바뀔 생각 조차 없다면, 저는 그런 사람들이 타인을 비방하고 평가하는 것은 더더욱 사회의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자신의 들보도 발견하지 못하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의 주관대로 사람들을 판단한다니...

그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워지겠습니까?....


원칙대로 하면 된다?

무슨 원칙 말입니까? 

차갑게 말하고 무시하듯 말하면 안된다는 원칙이 있습니까? 법적 처벌을 받습니까?

비꼬면서 말하고 쓰레기처럼 쳐다본다고 법적 처벌을 받고, 원칙에 위배됩니까?

무시하고 사사건건 시비 걸고 하나 하나의 모든 행동에 지적질을 하는 것이 원칙에 위배됩니까?


그런 원칙은 없습니다. 해도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평가할 객관적 잣대도 없습니다.


원래 생긴게 싸가지가 없고, 원래 말하는게 건방진건데 그것이 죄다?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말입니까?


하나 잘못했다고 계속 지적질하고 계속 냉정하게 대한다고 그 누가 그것을 잘못이라고 판단한단 말입니까?

그 고의성을 무엇으로 입증합니까?

심증? .....


원칙으로 그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그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원칙은 정의가 아니고 행복이 아닙니다.

원칙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여러분들을 구분하기 위한 대충의 시스템일 뿐입니다. 


배추장사꾼에게 와서 감 찾는 꼴입니다.

해답은, 자기 자신이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 바뀌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설령,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이죠.


그 희생은 감수하기 싫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자격도 없습니다.

책임 없는 요구는 궤변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Written by K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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