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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나름 가장 친했던 친구를 만났다.


나름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베스트 프랜드" 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그 사람과 최고로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최고로 친하다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고, 그것을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지역에서 산다.


그것은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다큰 어른이든, 노인이든 마찬가지이다. 


서로 언제나 함께 할 수가 없고, 서로 다른 터전에서 돈을 벌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하며, 서로 다른 인간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간다.


그렇기 대문에, 내가 그 사람과 가장 친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단정지을 수 없다.


난 어렸을 때, 그 친구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이 친구에게 나는 섯불리


"우리 제일 친했잖아."

"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마음 속으로는 난 이친구를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다큰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그냥 친구 중에 한명이었던 것 처럼 이야기를 건내는 나를 보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다면, 내가 조금 더 신경쓰고 살아왔어야겠지만, 난 어쩌면 어렸을 때 친구라는 존재는 내 인생의 2번째 3번째 서열에 불과했다.


외롭고 힘들 때는 친구가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나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면서 그 친구를 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결국, 적당히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을 것이다.


서로 필요할 때 위로해주고, 서로 도와주는 그런 개념 말이다.

 

 

이런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라서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간과의 친구관계라는 것은 결국 나의 필요를 위해 맺는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친구이지만, 내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친구가 아니다.


아무튼, 그 친구는 내게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해준 고마운 친구였다.


그리고 지금도 고맙게도 내게 연락을 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한 그 친구는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이전에 내가 알던 그 친구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그 친구는 세상에 찌들어 있었다.

찌들었다는 것은, 세상의 이런 저런 더러운 꼴 다 봐가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많이 실망을 했고 매우 현실적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어찌보면 요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어짜피...뭐...사람들은 어짜피..."


라면서 말이다. 서로 웃고 떠들고 대화하며, 서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놀다가도, 혼자 있을 때는 결국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어찌보면 나 역시 많이 변했다.


그러나 난 반대로 변했다.


난 어렸을 때 너무 이 세상의 현실에 부딪히며 힘들어 했기 때문에,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가며 살았다.

그러다가 나 스스로 지친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치열함을 위한 마음들을 귀찮아서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인생의 중반부터 지금까지 그냥 순정의 나만 남아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권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싫은 것일 뿐인 사람 말이다.

그 사람이 잘난 사람이던 못난 사람이던, 됨됨이가 된 사람은 좋아하고, 내 상급자이건 나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던 사람이건 간에, 이상한 사람은 상종하지 않는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아이러니 하게 생각하고 생각없다 말하지만, 난 이런 내 모습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난 이친구에게 얻어낼 것도 없고, 도움 받을 일도 없다.

이 친구를 안다고 해서 내게 득이 될 일은 없다.

이 친구는 그냥, 나의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조그마한 위로가 되주었던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만나는 것이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는 내가 시간을 소비해가면서 까지 말이다.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 친구는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도 허세를 떨어야 하며, 나도 잘나가는 척 연기를 해야 하는건가...."


라고 말이다.


난 그냥 솔직하게 오픈하면서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의 눈빛을 보니 나의 말과 행동, 대화 내용을 보면서 많은 계산을 하는 듯 했다.


난 사람들에게 무엇을 얻어 먹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얻어 먹는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난 본래, 몇십만원 짜리 고급식사를 사준다고 해도, 싫은 사람과는 쫄쫄 굶다가 라면 하나 끓여 먹을지언정,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이런 내 성격 때문에 직장에서 트러블도 많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상대방이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동창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산하고 있구나...."


까놓고 말해서, 그깟 술값을 계산하는 것이 대단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아까울 것 없다.

난 머리에 모두 기억해 둔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계산적 사고 없이 대해주고 있구나." 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술값, 밥값을 어느덧 머리에 계산하고 있는 듯 했다.


이번에 내가 샀으니, 다음에 네가 사.

물론, 매너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이런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돈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친구가 잘나간다면 당연히 나에게 잘해주겠지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친구를 애초에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중이 떠중이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식사를 허세 부려가며 맛있는 고기로 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근처 커피집에서 작은 사이즈 커피 하나 시켜놓고 하루 종일 수다 떨면 그만이다.


그깟 고기 따위야 만약 부담이 된다면 줘도 먹지 않는다.

난 어려서 부터 부모라는 존재에게 그런 수치를 많이 당해보았기 때문이다.


밥 따위는 평생 컵라면만 먹고 살아도 상관없다.


즉, 상대방이 무엇을 사주고 생색을 낼 것이라면, 애초에 그냥 안얻어 먹고, 선물도 안받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난 지금 별로 필요한 것도 없고,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나는 그냥 커피 한잔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만 있으면 그자체로 만족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의 고등학교 동창의 행동에서 그렇게 계산적인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세상적으로 잘못됬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적인 것으로는 서로에 대한 매너와 배려의 개념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난 세상적인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직장생활이 바쁘다고 못가는 친구 따위는 내가 되지도 않고, 그런 친구를 위해 나의 시간을 투자할 생각도 없다.


언제든지 만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만날 수 있는 그런 친구.

나는 그런 친구이고 싶고, 또한 그런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 이외의 친구라는 존재들에게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다.


난 애초에 친구를 잘 만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딱히 지금 많은 친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의 추억으로 만난 친구였고, 나름 시간을 내서 간 것이었는데, 그 친구는 내가 무엇을 얻어 먹으러 간 줄 아나 보다.


그냥 대신 내가 모두 계산하고 올려다가 말았다.

최초급 식당에서 먹는 것도 아니고, 고기값 술값 몇 푼에 그런 계산을 하는 친구가 되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세상이 그 친구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친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친구란, 친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직업이 뭐니, 돈이 얼마 있니, 여자친구가 예쁘니 마니, 결혼한 와이프가 어떤 사람이니 마니 하는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은 내가 아는 여타 사람들 처럼 그를 그렇게 변화시켰다.


직업적으로 만나는 비지니스 관계가 아니라, 그냥 친구에 대해서 쓰는 글이다.

나도 일에 관련된 사람들은 계산을 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일이라는 것은 이윤을 남겨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지금, 그냥 친구에 대해서 적고 있는 것이다.


친구.

그냥 친구 말이다.


참고로 난 내가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을 위해 조그맣게 내 성의를 표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누가 얼마를 도와줬으니 나도 그만큼 갚는다 따위가 아니다.

그런 계산을 하기로 따지면 나는 아마 우리나라 최우수급은 될 것이다.


하지만 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가족이라는 존재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나는 애초에 부탁이라는 것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족들을 믿었기 때문에 이것 저것 부탁했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존재들이 자신들이 이런 부탁을 들어줬으니 너도 그만큼에 대한 보상적인 행동을 하라는 마인드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들을 과감히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믿기 때문에 부탁한다.


그리고 나는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배풀어준 호의를 금전적인 수치로 계산하자면 몇배에 달하는 보답을 준비중이다.

그렇게 계산적으로 따질 거면 애초에 사귀지도 않는다.


아무튼 조금 실망했다.


그 친구는 알까?


밥을 얻어 먹고 있는 친구인 내가 지난번에 그 친구의 아들 생일을 스치듯 물어보며 기록해 놓고, 무슨 선물을 사줄까 고민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소주값 몇 푼 따위보다 더 비싼 선물 말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단지 나를 만나고 싶어서 연락을 해서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 마음이 참 고맙기 때문이다.

그깟 소주와 고기를 내가 사먹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이다.


내 전화기에 남이있는 친구라는 폴더에 저장된 사람들의 부재전화 중에 내가 그 친구에게 연락한 것을 알고 있을까?


솔직히 섭섭하다.


내가 술을 한 번 사면 나에게 두번 술을 사겠다고 같이 먹자는 사람들은 근처에 널렸다.

난 그런 사람들과 같이 그 친구를 생각해서 간 것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한심할 줄 모르겠다.

그냥 내 솔직한 기분이 이렇다.


왜냐하면 나는 안만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일 없듯 편하게 이것 먹고싶다. 저것 먹으러 가자 한것인데 말이다.

난 애초에 굶어 죽어도 사람들에게 부탁같은 것 안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난, 일개 동창회에 나간 것이 아니라, 어렸을 적 기억에 남는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인데 말이다.


난 믿으면 믿는다.

하지만 처음에 믿음을 쉽게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믿기로 했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도 믿는다.


그게 내가 가진 사람에 대한 믿음의 정의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난 한 번 친구를 믿으면 믿는다.

하지만 처음에 그 친구를 쉽게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기로 했으면, 그 친구가 설령 세상사람들에게 버려지더라도 나는 그 친구를 믿는다.


그게 내가 가진 친구에 대한 정의이다.


몇 천만원 짜리 수입차 한대를 내게 사주면서 자신의 호의를 자랑할께 아니라면, 내게 그 호의를 자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반 적인 호의는 계산하면 푼돈이지만, 그 마음의 진실함은 계산될 수 없다.

난 그 계산할 수 없는 마음의 진실을 원할 뿐이다.


그게 내가 친구를 사귈 때 조건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난...


변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얼굴도 바뀌고, 몸도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만났을 때 바로 어제 만난 것 처럼 밝게 웃어주는 내 미소와, 장난끼 있지만 항상 상대방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허세 없는 태도 말이다.


허세 없는 태도는 내가 잘나갔던 과거 시절에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가진 허세보다 훨씬 실제로 잘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어렸을 때 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문자 한통이 왔다.


뜬금없이 보고 싶다고 보낸 다른 친구의 문자이다.


그들이 내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난 언제나 그대로이기 때문일 것이며,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몇달 만에 오랜만에 보낸 그 친구의 문자에 "오랜만에 왠일이래? 뜬금없이?"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친구이기 때문이다. 


답문자를 하나 보내주면 그만이다.


"지금 어디야? 밥좀 사주세요. 나 배고프다."


Written by Kavin

(사람들이 계산적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거야.)

알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지.)

알아.

(그런데 왜 그런 계산적인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다는거야?)

계산은 내가 더 잘하니까.

계산 잘하는 사람은 필요가 없어.

내가 지금 친구 사귀기 비지니스 하는 것 아니잖아?

하긴. 결혼도 비지니스인 세상에서 내가 멍청해 보일 수 있겠지.

그런데 상관없어.

내가 멍청하지 않으니까.

(넌 진정한 우정이 있다고 믿니?)

그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의 모든 인간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야.

연극 따위에 불과하지.

여러분의 공감하트와 댓글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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