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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도 있는거야.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방관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 문제들을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려고 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를 비난한다.

 

뭐하러 그렇게 나서느냐.

왜 그렇게 소극적이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누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누군가를 탓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그 결과와 과정으로 인해 그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결국 어떤 한가지 방향으로 자신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방향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자신의 모든 것들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와 상황에 맞게 자신의 성향을 결정하기 보다는

일관되게 한 가지 방향으로 결정을 한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난 지금까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 해결할 필요가 뭐가 있어.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자세가 항상 잘 통하다가도, 어처구니 없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만나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내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다.

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었다.

 

그러나 나는 알아서 되겠지 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실패하고야 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실패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방향으로 잘 살아왔다고 하지만,

단 한번의 자신의 판단 실수는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결국 결과가 말해준다.

 

결과가 좋으면, 자신의 철학이 올바른 것이었고,

결과가 나쁘면, 어리석은 주관에 불과하다.

 

이 세상은 결과론 적인 곳이다.

 

과정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과정 따위는 중요시 여기지 않는 세상을 함께해 왔다.

 

그 과정이라는 것도, 결과들의 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중간 결과 하나 하나들이 과정이 되는 것이다.

 

결과물은 있어야 한다. 중간에 하고 있던 결과이든, 그 무엇인가를 입증해야만 한다.

 

어떠한 결과물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큰 실패를 맛 보게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생에도 컴퓨터 처럼, 리셋이 있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이다. 그런데 인생이란 예행 연습도 없고 리셋도 없다.

자신의 철학을 검증할 기회 조차 없다.

그냥 달려나가는 곳이다.

 

어찌보면 모두가 그렇게 달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들 역시 예행연습 없이 뛰어든 인생이라는 무대의 하나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들도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해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는 다른 이를 탓하는가.... ....

 

난.

난...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행동과 태도들을 난 받아드릴 수 없다.

아무리 그들 역시 자신의 철학을 입증할 기회가 없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30대까지는 모르더라도, 40대 이후에, 또는 50대 이후에는 그들의 철학에 대한 검증 쯤은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40대 쯤이 넘어가게 되면, 서서히 그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많으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이 싫다.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고, 이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큰 아픔을 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단지 귀찮을 뿐이다.

아니면 그들의 독잔적인 마음이 자신에게 이기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

 

 

 

분명 알텐데.

분명 그런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된 다는 것을 알텐데...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행동한다.

 

그래서 난.

받아드릴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자비로운 태도를 보일 수가 없다.

 

그들도 안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한 상처가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다는 것을.

그러나 고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강해지라고 하고, 내가 연약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진다고 한다.

 

누가 잘 못된 것일까?

 

상처를 주는 것임을 알면서 상처주는 사람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상처를 그만 주라고 요구하는 내가 잘못된 것일가.

 

누가 잘 못된 것일까.

 

돌이킬 수 없다면,

그냥 포기하는 것인가?

어짜피 안될 것, 노력해봐야 본인 만 피곤하니까?

 

어차피 안된다....

어차피 안된다?

 

본인이 상처를 줘 놓고,

어차피 그 상처는 치유가 안된다?

그러니까 계속 상처를 주겠다?

 

이것이 그들의 논리인가?

 

죽기 직전까지 그들은 떠들 것이다.

 

"어쩔 수 없었어."

 

무엇을 어쩔 수 없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무엇을 어쩔 수 없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에게, 백번 천번, 나의 상처를 말 해 보아야

소용 없다.

어짜피 그들은

 

"어쩔 수 없었다."

 

로 방관할 테니까.

 

그들도 알고 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서 가능성을 삭제 해버리는 것 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삭제한 사람들과는 그 어떤 논리로 맞서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은 어짜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 많은 수고를 하면서 까지 자신이 변화되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의 시작은, 어짜피 안될 것이라는 단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단념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한 쪽이 상대방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포기를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포기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만약

내 앞에 서 있는 저 사람들이 나를 포기했다면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난.

 

안다.

 

저들의 말투와 표정을 보면서 말이다.

 

저들이 나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이다.

 

상처는 그들 마음대로 줘 놓고서, 그들 스스로 나를 포기한다라...

 

해결할 수 없다.

 

해결하려고 참아온 수십년의 시간은 모두 헛 고생이다.

 

인생에 예행연습이 있었다면,

난 10대 때부터 아마 그들을 버렸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믿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래서 나도 그들을 포기힌다.

그들을 단념한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귀머거리인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라디오를 들려줘 봐야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그 때 보통은 모두 그 귀머거리에게서 라디오를 치워버린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는 거기까지가 된다. 그것이 바로 단념이고, 그것이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인연의 끝을 놓고 싶지 않다면

혹시나 저 귀머거리가 라디오를 언젠가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기적이라는 0.1% 가능성이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념하면,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0.1%의 기적을 믿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포기하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자신이 포기했음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 없다. 그 때부터 그들의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 시작 될 뿐이다.

 

난 오늘도,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들을 단념하겠다고 하면서도 왜 이렇게 더욱 더 힘들어지는 걸까?

 

왜냐고?

 

나보다 먼저 나를 단념한 그들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기하고 나서,

그들이 그냥 마음 편하게 살았을 그 시간들을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난 그들이 나를 포기했을 당시

나를 포기한 줄 몰랐다.

 

그런데 난 그들이 나를 포기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을 포기하려고 하는 내 모습과 태도에서,

그들이 과거에 내게 했던 행동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그들을 포기했기에 이제 시작하는 행동을,

그들은 이미 10년 넘게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들은

나를 훨씬 오래 전에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서,

난 알게 됬다.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To Winnie

 

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수십년의 삶을 산 뒤에나 깨닫게 되었어.

 

왜냐하면

난.

누군가를, 아니면 그 무엇이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거든.

 

그런데 난

이제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

 

왜냐하면

 

내가 포기를 해보니까,

삶에서 수 많은 포기를 하며 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사람들은 수 없이

포기하고 있었어.

 

그런데 난 몰랐어.

 

그래서 내가 참 한심해.....

 

나도... 점점 많은 것들을 단념하고 포기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파.

 

난 그렇게 하기 싫은데.

 

나도...

포기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니?

 

나.

포기 하기 싫은데..

나도 포기 하면서 살아야되?

꼭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만들면서 살아야되?

그렇게 가슴 아프게 살아야만 해?

왜?

세상사람들은 그러니까?

세상사람들은 어짜피 그러니까?

왜 그렇게 모든 것을 획일화 시켜버리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내가 포기라는 것을 배우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린지 아니?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

그런데 난...

또 다시 포기하면서 살아야해?

 

괴롭다.

 

나 역시 누군가를 잊고 살아야 한다니 말이야.

 

그런데 난 하나만 약속할께.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오해하지마.

난 어떤 이를 포기하는데, 수십년이 걸렸다고.

난 한순간으로 누군가를 쉽게 포기하지 않아.

 

왜 포기했냐고?

수십년 간 단 한순간도 그들은 내게 미안하다고 한 적 없으니까.

 

수십년의 인생동안 단 한 번도 말이야.

 

난 절대 누군가를 쉽게 버리지 않아.

그가 혹시 내게 너무 나쁜짓을 하더라도 말이야.

난 절대로 쉽게 버리지 않아.

 

왜냐하면 누군가를 버린다는 것은

정말로... 나쁜 짓이니까.

 

난 항상 열려있어.

언제든지 와서 기대면 되.

그냥 와서...말하면 되. 힘들다고.

100 번이고 1000 번이고..

그리고 아주 가끔씩 또 한만디만 해주면되.

 

"내가...너무 힘들게 하지? 괜찮아?"

 

라고...

 

100 번, 1000 번, 10000 번 이고 나에게 와서 울어도 되

힘들다고 짜증을 내도 되.

 

그냥 한 번씩 아주 가끔 씩

진심으로 이 한 마디만 해줘.

 

"너도....힘들지?"

 

라고....

 

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을 만들기 싫다...

왜...내가 1을 요구하고 9를 주겠다는데....

왜 나에게 그 1까지 뺏어가려고 하는거니....

난 어떻게 살라고...

 

From K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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