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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스트의 우리별 연구동

 

나는 어릴적부터 카이스트 라는 곳을 사랑했다.

 

나는 카이스트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난 문과 출신이었고, 카이스트 라는 곳은 단지 이상에 불과했다.

 

난 언제부터 인가 삶이 힘들 때 긴 시간을 드려서라도 카이스트에 방문하고는 한다.

사실 그곳에 간다고 해서,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할 일도 없고, 놀 곳도 없다.

그냥 교정을 말 없이 걷는다.

 

단지 그곳의 분위기가 좋다.

여유로와 보이는 분위기 말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소음으로 가득한 삭막한 지옥이기 때문에,

이런 고요함은 내게 평화로움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카이스트 라는 곳은, 단지 우수한 학교 중에 하나라는 이미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가는 곳. 순수함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든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엉뚱한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서 걷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지?

 

아마 우스울 것이다.

감히 카이스트 대학 교정을 거닐고 있는 일반인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난 단지 이 곳이 좋다.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내 삶에 대한 순수함이 무너지고 나서, 나는 더욱 더 카이스트를 많이 찾아간다.

 

어쩌면 난 그 순수함을 찾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학생들의 모습과, 평화롭지만 치열할지 모르는 각 학과의 건물들을 보면서 나는 그 순수함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카이스트에 진학했다면,

아마도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을까?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

 

내 인생이 과연 바뀌었을까... 라고 나에게 묻는다.

 

그런데 나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우습다.

 

"바뀌지 않았을꺼야."

 

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때 당시 현실에 집중했다. 꿈과 이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나의 현실 속에서 카이스트라는 곳은 그리 만족스러운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 등 사회에서 인정받는 대학 보다, 어찌보면 더욱 엘리트인 그들이지만, 대전이라는 지방 한 곳에 박혀서 공부만 해야 하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래.

 

나는 억울했을 것이다. 그리고, 멋진 양복을 입고, 멋진 사회생활을 하는 일반 대학 친구들을 부러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카이스트는 결국 내게는 이상에 불과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시절, 학과 선배가 카이스트로 편입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었다.

 

"구태여 그곳을 왜 가려고 하지?"

 

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 선배의 선택이 정말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 껏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행복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공부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 없는 분야이다.

지루하고, 인내심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미화한다.

결국 자신들에게 하라고 한다면 고개를 저을 꺼면서 말이다.

 

그곳은, 그런 인내를 겪어온 학생들의 조용한 투쟁심이 불타고 있는 멋진 곳이다.

카이스트의 학생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의 연구와 학업으로 승부를 한다.

그들은 조용한 승부사인 것이다.

 

한 때는 그들이 서울대에 가서 인정받고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선택이 상당히 성숙했음을 느낀다.

순수한 열정.

그들은 그 가치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애시당초 순수한 열정이 없었던 것 같다.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 나의 미래에 대한 맞춰가기 식의 인생이었던 것 같다.

난 내 인생에 승부를 보지 못했었다.

 

 

 

그 승부를 피해왔을 뿐이다.

 

그 승부가 무서웠기 때문일까?

 

두 가지가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귀찮음. 그래 그 이유가 있다.

 

나는 실패를 하면 안되는 상황에서 살아왔다. 단 한번의 실패는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실패라는 것은 내 목표에 대한 실패가 아니라, 중상급 이상의 사람들의 기준에서의 실패였다. 그래서 무리한 도전으로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하는 것은 내게 두려운 일이었다.

 

또한 누군가의 핑계를 대고 있지만, 나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막연한 귀찮음이 있었던 것 같다.

새롭게 적응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귀찮음. 내 마음의 한 켠에는 그런 마음도 분명 존재는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나의 가정환경이 만들어주었었다. 내가 재수를 한다고 했을 때, 내 가족의 표정을 보면서 어쩌면 난 나의 운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내 인생은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카이스트와는 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달라질 것은 없다.

난 도전하지 않았고,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들이 부럽다. 그래서 난 그들을 존경한다.

비록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난 그들을 존경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으시댈 수도 없는 지방 한 켠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용기는 내가 가질 수 없던 것이었다.

 

순수함이 깨져버린 지금,

나는 초쵀한 모습으로 카이스트의 교정을 걷는다.

 

내 초라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

 

멋진 모습으로 교정을 거닐어야 하는데 말이다.

 

△ 카이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아리건물 앞 가로수 길

 

비록 나의 모든 것이 깨어져 버렸지만,

내 마음 속에 순수에 대한 작은 불씨가 있는 한,

가끔 씩 이곳을 찾고 싶다.

 

나의 순수함에 대한 불꽃이 사그러져 버리지 않도록...

나에게 남은 아주 작은 그 불씨가 꺼져버리지 않도록....

 

결국 꺼져버릴 불씨이지만....

 

 

임기응변이 통하지 않는 공간

그래서 내가 갈 수 없었던 공간

먼발치에 나마 바라본다.

노력이 쌓이는 그곳

끝없는 노력이 배신과 싸우는 그곳

순수한 열정이 살아있는 곳

그곳... 카이스트

그러나 지금의 난...

더 치열한 인생의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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