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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규모의 기업에서도 일해 보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업종에서도 일을 해보았다.

그래서 어쩌면 현장 업무와 사무 업무에 대한 객관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사무직을 원망도 해보았고, 사무직을 해보면서 수 없이 현장직 노동자들을 원망도 해보았다.


이 둘의 관계는 아마도,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단순한 미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써 내려가는 나의 글을 한 번 잘 읽어보길 바란다.


(현장, 즉 공장이나 배송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현장직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이 천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1.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던 경험담 (현장직 1)


난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었다. 물류센터의 업무는 육체적으로는 다소 힘이 들지만,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어떻게든 그날의 물량은 그날에 끝난다는 것이다.


현장의 업무들이 대게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날의 주어진 업무는 거의 그날에 모두 마무리를 짓는다.


사무직을 하면서 일이 끝도 없는 현실에 좌절했던 나는, 스스로 물류직 직업을 선택했었다. 


현장직의 특성은, 아무래도 몸으로 일하는 일이다보니 서로가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기 때문에 그냥 서로 힘들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 그렇다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냥 서로 힘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게 인정하고 있었다. 자기 몸 건강 관리하기도 벅차기에 어찌 보면 더더욱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곳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동료들과 친해질 무렵, 나는 나의 동료들과 담배를 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그들의 관심사와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하는 말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찌 어찌 해서 내가 이런 일이나 하고 있지...."


그렇다. "이런 일" 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형님에게 반문했다.


"이런 일이요?"

"그래 이런 일."

"이런 일이 어때서요?"


나의 질문에 형님은 잠시 웃으면서 그냥 다른 주제로 대화를 넘기려고 하고 듯 했다.. 인격적으로 괜찮은 형님이었기에 나의 질문을 그냥 귀엽게 받아드려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잠시 적막이 흐른 뒤, 형님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내 뿜으며 내게 한 마디를 했다.


"힘들잖아."


'힘들다라...'


현장직 근론자 또는 육체적 노동 근로자들은 큰 착각에 빠져 있는 듯 했다. 비단 이 형님 뿐만 아니라 다른 형님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말이야. 결혼을 했으니까 이딴 일이나 하고 있지. 결혼 안 했으면 내가 왜 이따위 일을 하고 있겠냐? 넌 결혼 하지 마라."


'이 따위의 일 이라..."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넥타이를 목에 두른 사람들은 어찌보면 현장직 근로자들에게 매우 편한 일을 하는 사람 처럼 보이는 듯 했다.


난 그들과의 대화에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들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스스로가 가진 직업을 스스로 천하게 보는 걸까... 왜 자신을 스스로 천하게 여기는 것일까...."

 

 



2. 매장 영업관리를 했던 경험담 (현장직 2)


 

매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더러운 꼴을 볼 때가 많다. 특히 최종 소비자인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판매일을 하다보면 고객의 갑질에 무참히 짓밟히는 경우가 많았다.


매장 영업관리는 주로 "본사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인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현장에서 근무하는 영업관리자들은 본사 직원만 보이거나 전화가 오면 짜증과 불평을 털어 놓기 일 수 있다.


"아우. 이XX 들은, 현장 현실도 모르면서 맨날 이 따위 지시만 내려. 팬 대만 굴린다고 뭐 나오냐? 이것들도 한 번 현장에서 일해 보라고 해!"


아마도 이런 표현을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을 하는 기본은 본사에서 일하는 사무직 직원들이 현장을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평 보다는, 본사 사무직 직원들이 편하게 머리만 굴리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은 힘들게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본사 직원은 편하게 앉아서 근무를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난 매장에서 영업관리를 하면서 어찌보면 본사 직원들과 매우 잘 맞았던 케이스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 사무직을 해 보았고, 본사 직원들이 얼마나 X 같은 분위기에서 근무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을 이해 해주었기 때문에, 그들도 나를 이해해 주고는 했다. 어찌 보면 가장 악독한 존재는 다름 아닌 현장에서 근무를 하다가 본사로 발령난 직원의 케이스 이다.


이들은 현장에 대해서 자신들이 잘 안다고 당연히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혹독하게 매장에게 운영 지침을 내린다. 차라리 처음부터 사무직 직원들이 낫다. 


아무튼, 현장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거의 90%가 사무직을 원망한다. 그 원망이 단순한 원망이라기 보다는 그냥 몸 속에 배어있는 원망이었다.

 

 



3. 제조업체 사무직을 했던 경험담 (사무직)


 

나는 공장에다가 이런 저런 오더와 협조를 구해야 하는 본사 사무직으로 근무를 했었다. 공장 직원들은 요청하는 자료를 한 번에 제대로 주면 매우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 싶을 판이다. 그들은 제대로 문서를 보내주지도, 그렇다고 잘 편집해서 보내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멋지게 자료를 꾸미고 편집하는 것은 모두 본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메일로 날라온 자료를 보고,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노 라면, 내 스스로 욕을 내뱉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해도 해도 너무 성의 없이 보내온 자료들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바쁘다고 말한다.


전화를 하면, 너무 바빠서 전화도 못 받을 상황인 것 처럼 말한다. 결국 그들의 성급한 말투에 난 내가 필요로 하는 요청들을 몇 가지 줄여 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 협조가 필요한 업무들을 차후로 미루거나 또는 늦은 시간까지 기다릴 때가 많았다.


물론 내가 모질지 못한 면이 있어서 내가 스스로 일을 어렵게 처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무직의 경우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일 들이 많다. 현장직 근로자들과는 어찌 보면 상명하복의 관계라기 보다는 서로 협조를 하는 관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현장 근로자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우리나라가 만든 하나의 보여지는 룰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무직의 협조 업무가 힘든 이유는, 자료 요청 협조를 구하면, 그 자료가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늦게 자료를 받으면 그 때 부터 업무 시작이다.


대표이사는 본사에 지시를 내린다.

본사는 대표이사의 지시를 따라서 현장에 협조를 구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되는데, 대표이사는 본사에 지시를 내리지만, 본사는 현장에 "협조"를 구한다는 것이다. 지시가 아니라 말이다.


대표이사가 지시했으니 기일 내에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반대로 본사는 현장에 지시를 내리기 힘든 구조이다 보니 결국 보고서는 그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가 어렵고, 그에 대한 책임과 욕은 본사 직원에게 돌아온다.


꼭 현장에 오더를 전달하거나 협조를 구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무직들은 "협조" 와 "부탁" 을 많이 해야 한다. 자존심이라는 것을 중요시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장에 "하세요" 가 아니라,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난 이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


가끔 공장장님 과의 대화에서 내 선에서 해결 할 수 없을 때는 결국 우리 팀의 이사님에게 요청을 한다. 이사님은 그런 것 하나 못처리 하냐고 내게 짜증을 낸다. 그리고 일을 처리해 주신다. 그러면 공장장님은 나중에 내게 "그런 것을 왜 이사님한테 까지 말하느냐" 라고 말한다. 물론 두 분다 나 보다 인생으로 봤을 때는 훨씬 어른이었다.


중간에 끼여서 협조 업무를 해야 하는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인생 살면서 없던 진정한 탈모를 처음 경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머리숱이 확 사라진 시기가 바로 사무직을 하면서 부터이다.


내가 가끔 그분들에게 투정은 부릴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같이 "나이가 주는 불편함"이 큰 사회구조 속에서는 내가 그 분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직급 대 직급, 그것도 안된다면 해당 업무에 대한 책임자와 책임자로서 대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회 구조의 문제점이지만, 그것을 문제라고 떠드는 요즘 시대의 젊은이들 역시 그들도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모두 "형대접을 받고 싶을 뿐" 이다.

자신이 형의 위치라면 형의 대접을 받고 싶은 것 뿐이고, 자신의 동생의 위치면 고리타분한 사회구조라면서 바꿔야 된다고 시위를 하는 것 뿐이다. 내가 경험한 사회생활 속 사람들의 특성을 보면, 결국 모두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행동 할 뿐" 이었다. 

 

 


4. 현장직은 사무직을 원망하고, 사무직은 현장직을 원망한다.


 

그렇다. 양쪽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아마 대부분의 기업들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서로가 원망하는 구조 속에서 그들은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다.



5. 현장직은 사무직을 부러워하고, 사무직은 현장직을 피하고 싶어한다.


 

현장직 직원들이 사무직을 부러워 하는 것은 맞다. 

그들은 항상 "본사 발령" 이라는 기대를 하며, 그들과 함께 하며 "본사 발령 난 동료를 부러워한다." 라고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본사 사무관리직 이라는 것이 승진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이 되기 때문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더러워진 작업복을 벗고 일할 수 있는 그 동료를 부러워 하고 있는 눈빛으로 보일 뿐이다.


사무직 직원들은 현장직 직원들을 겉으로 무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 마음으로는 


'현장 노동은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의지는 엿 볼 수 있다. 사무직 근로자들이 현장 근로자를 무시한다기 보다는, 뭐라고 할까, 현장직 종사자가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그 시선을 자신이 받게 될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욱 맞다고 볼 수 있겠다. 


사회적 편견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시선들이 이들 두 직업군을 갈라 놓고 있는 것이다.

썪어 빠진 사회적 편견 말이다.


그렇다면 그 편견은 누가 만들고 있는 것일까?

 

 


6. 직업의 귀천은 현장 근로자가 스스로 만들고 있다.


 

난 양쪽 모두에서 일을 해 보았기 때문에, 현장직과 사무직 모두를 이해한다.


그러나, 사무직이 현장직을 바라보는 것 과는 달리 현장직이 사무직을 바라보는 시야는 너무 공격적이다.

사무직 직원들의 속내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티는 잘 내지 않지만, 현장직 직원들은 대놓고 사무직에 대한 질투심을 표출한다.


그리고 스스로 어찌보면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장이나 다니는, 물류센터에서 일이나 하는, 택배나 배송하는 나는 그냥 돈만 벌면 되는 발전 가능성 없는 직장인이다."


라고 그들은 스스로에게 매일 이야기 한다.


왜 스스로를 그렇게 만드는가?


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입사지원을 해서 들어갔다. 그리고 난 상당히 적성에 잘 맞았었다. 너무 먼 출퇴근 거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속할 수는 없었지만, 먼 출퇴근 거리를 가정해 보았을 때는 꽤나 오래 일을 했다.


내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할 때


"아니 스팩도 좋은데, 왜 여기 다녀요? 대기업 이력서 충분히 쓸 수 있잖아요."


라는 동료들의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물류센터에서 일 할 때는 팀장에게 


"혹시나 해서, 다른 직원들에게는 괜히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학벌이나 이런 것은 이야기 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까지 부탁을 했다.


"아니 왜 내가 이런 부탁을 해야하는가!?!"


중소기업 직원들은 왜 자신의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없으며, 왜 현장직 근로자들은 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애착심이 없냐 이말이다.

내가 얼마나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그런 편향된 시선과 과연 내가 오래 다닐까 의구심을 가지는 시선으로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게 하느냐 이 말이다. 


난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대기업 보다 조금 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왜 그들 스스로 자신의 직업과 직장을 무시하느냐 이 말이다.


복지? 없어도 된다. 뭐 얼마나 대단한 복지를 회사에서 받는다고 복지 복지 타령인가?

월급? 많아봐야 얼마나 차이 난다고 그렇게 불만과 시기에 차있는가?

돈 없으면 경차 타면 되고, 돈 있으면 큰 차 타면 되는 것이지, 큰 차 타는 사람들이 경차를 무시하지 않지만, 경차 타는 사람들은 큰 차 타는 사람들을 시기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장직 근로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들과의 직업의 귀천을 만드는 원리 아닌가?


내가 못 가진 것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시기하고, 반대로 자신은 스스로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행동 말이다.

직업의 귀천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공장 직원들, 택배 직원들, 배송 직원들, 그들 스스로가 만들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직업을 천하다고 스스로를 무시하며, 또한 같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까지 무시하고, 

자신이 혹시 천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에서 벗어나면 훨씬 더 천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말이다.


자신이 멋지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 스스로라고 생각하는가?

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만 갇혀서 자신을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또한 똑같이 그렇게 무시하느냐 이 말이다.

직업의 귀천 이라는 쓰레기 같은 단어는 버려라.

세상에서 그 어떤 일도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다.


환경미화원이 있기에 우리가 깨끗한 인도와 도로를 걸을 수 있고, 건물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분이 있기에 깨끗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미화원에 대해서 동정할 필요도 없다.

택배업 종사자들을 동정할 필요도 없다.


왜 동정하는가?


그냥 그들은, 세상에서 필요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고생하시는 환경미화원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 없다.

고생하는 택배 직원이라고 단어를 쓸 필요 없다.

그 어떤 일도 고생안하는 일은 없다.

당장 강남 한 복판에 있는 모든 빌딩에서 근무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도 모두 힘든 상황에서 근무를 한다.


누구는 힘든 직업이고, 누구는 힘들지 않은 직업이다?

난 물류센터 일이 나의 사무직 근무보다 훨씬 수월했다.

난 어렸을 적 화장실 청소, 마트 청소들도 해보았다.

사무직보다 차라리 그게 낫다.


서로 힘든 분야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나 같은 성향의 사람은 사무직이 힘든 것일 뿐이고, 또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은 현장직이 힘들 뿐이다.

사무직이라서 쉽고, 현장직이라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런 편견을 가지는가?


사무직 해 보아라.

사내정치 속에서 마음이 썪어 간다.

사무실에 갇혀 있다 보니, 상대방의 옷차림, 말투, 표정, 피부, 애인, 성격, 하나 부터 열 끝까지 서로 헐뜯을 구석만 찾아다니는 하이애나들이 득실 거린다.


간단한 일도, 절차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이정도면 충분한 일도 절차의 절차를 밟아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고, 그 욕을 먹는 것을 월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 사무직군 이다.

그럼 얼마나 무시와 욕을 많이 먹겠는가?


난 물류센터에서 또는 매장에서 영업관리를 했을 때 거의 욕을 먹지 않았다.


각 사람들 마다 맞는 직업군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적성에 따라 말이다.


왜 어떤 직업은 편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직업은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당장 당신에게 변호사 업무 맡겨주면 할 수 있는가? 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그들을 부러워 하는가?

자신이 할 수 있으면 하면 된다. 하지 못할 것이라면 그들을 시기하지도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아라.

자신의 능력 껏, 적성 껏 그렇게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 된다.

다른 목표가 있으면 더욱 노력을 해서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직업을 위해 도전을 하면 되는 것이다.


왜 편견을 가지고, 직업의 귀천을 스스로 나누며, 자신의 직업을 무시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은, 자신이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직업이다. 언제 퇴근할까 눈치만 보는 직업은 번지르르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장 멋이 없는 직업이다.)

 

 


7. 일이 멋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멋 없게 일하는 것이다.


 

내가 물류센터에서 박스를 적재하는데, 나에게 작업반장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물류일을 십년 넘게 하면서 너처럼 정리 정돈 잘하면서 일하는 애는 처음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육체적 노동으로 깜빡 늦잠을 자게 되어서 지각을 한 적 있지만, 내게 지각을 했다고 뭐라고 한 관리자는 없었다. 그 만큼, 이 친구가 적어도, 일하는 시간 만큼은 열심히 하는 직원이라는 인식이 박혔기 때문이다. 또한 나에게는 가끔씩 


"힘들지? 퇴근해 퇴근."


그 사납고 냉랭한 작업반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물류센터 일한 경험도 없는데 말이다. 난 일을 잘하지는 못한다. 다만 정상적으로 할 뿐이었다. 물류 업무 중에서 문제가 생기면 보고를 하고, 때로는 반장이나 작업 팀장에게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일이 발생하면 미리 미리 말하면서 커뮤니케이션 했다.

끝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쉬는 시간이라도 일단은 끝내고 쉬려고 했고, 뒷정리나 청소등의 작업도 그냥 시키면 열심히 했다.


오히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주변 동료들이 나에게 말했다.


"열심히 하지 마요. 뭐 하러 열심히 해요?"


내 눈에 보이는 수십 명의 동료들 중 단 20% 정도만 성실하게 일했고, 80%는 내가 사장이었다면 바로 잘라버릴 수준과 마인드로 일하고 있었다. 


100%의 일을 시킨다면, 항상 60% 정도 수준까지만 일했고, 나머지 40%의 일은 반장에게 떠넘기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반장과 직원들 사이에 관계는 당연히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열심히 일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행동과 말투에서 매우 껄렁 댔다.

그리고 마치 그것을 멋있는 것 처럼 여기는 듯 했다.


인사성도 없고, 서로를 존중하지도 않는다.


함께 일하는 동료이며, 육체적 노동을 함께 하는 동료인데, 서로를 무시한다.

그리고 무엇 보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순간에 대해서 


"이런 일이나 하고 있고 짜증나네."


라는 것이 그들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말투에서 모두 뿜어져 나온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스스로를 무시하는 것이다.


자신이 멋지게 일하면 된다.


누군가가 말끔한 차림의 작업복을 입고 나왔다면, 그것을 보면서


"야. 일하는데 뭐 그런 옷을 입고 나와. 크크."


라고 스스로 서로를 무시하지 말고,


"야 옷 멋진데?"


라고 해주란 말이다.


누군가가 멋진 헤어스타일로 일하러 나왔다면


"야. 머리 멋지다."


라고 해주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야. 여기서 일하면서 머리를 뭐하러 그렇게 꾸미고 다니냐?"


자신 스스로를 무시하는 말투와 행동을 하지 말란 말이다.


자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카리스마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직업의 귀천이라는 쓸 데 없는 단어를 쓰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지 말고, 지금 네가 일하고 있는 자세와 옷차람, 마음가짐과 일하는 태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길 빈다.


흙수저가 흙수저를 더욱 무시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어설픈 수입차 벤츠 타는 사람들이 국산차 타는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애시당초 매우 잘난 사람들은, 오히려 부족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진다.

지금 직업의 귀천을 가지고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존재들은, 모두 바로 흙수저 당신들이 만들고 있는 문화이다.


팀장이 되면 어떻고 , 과장이 되면 어떠한가? 모두 오너 아래에 있는 직원일 뿐이다.

그런데 누구는 팀장이네, 누구는 과장이네, 누구는 대리네, 누구는 계약직이네 따위로 나누고 있는 것이 바로 당신들 스스로 아닌가?


나는 연봉 4000만원이네, 나는 연봉 3000 이네, 나는 연봉 3500 이네 마네 등을 가지고 서로 견제하고 서로 무시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당신들 스스로 아니냐 이 말이다.

 

 


8. 맺음말


 

"차별은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라고 했던가? 나는 이 말에 동의 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글을 잘 읽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은 너희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하고 있다."


또한


"직업의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태도에 귀천이 있다."


라고 말이다.


"스스로가 멋지게 일하면, 그 어떤 일도 멋진 일이다." 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인터넷을 통한 쓰레기 문화가 퍼져가면서, 직업에 대한 귀천과 편견이 심해지는 2017년 이 시대에, 이 글을 읽고,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현장직이 맞는 사람이 있고, 사무직이 맞는 사람이 있다."


일 뿐


"현장직은 힘들고, 사무직은 쉽다."


라는 따위의 저질 스러운 말을 하는 못배운 사람이 되지 않기를 빈다.


"현장직은 멋이 없고, 사무직은 멋이 있다."


라는 따위의 질 떨어지는 생각을 뇌 속에 넣고 다니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을 어떤 자세로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라는 것을 머리에 넣고 다니는 진정한 스마트한 인재가 되길 빈다.


시험해 보아라. 당신이 그 어떤 일을 하던 멋있게 일하면 당신이란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자신이 스스로 겁쟁이 처럼 갇혀서 일하고 있지 않은가?


직업에 귀천은 없다.

다만 천하게 일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Written by Kavin


PS : 이 글은 엄청나게 불합리한 노동 착취를 당하는 근로자들의 상황은 제외된 글 이다. 일반적인 현장 노동자와 일반적인 사무직 노동자의 관점에서 적은 글이다.

여러분의 공감하트와 댓글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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